[인터뷰] '바람바람바람' 이성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018-04-1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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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바람바람'에서 석근 역을 맡은 배우 이성민[사진=NEW 제공]

이번엔 ‘바람둥이’다. 까칠한 기자(영화 ‘변호인’)를 비롯해 딜레마에 빠진 형사(영화 ‘방황하는 칼날’), 딸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영화 ‘로봇, 소리’), 비리를 저지르는 국회의원(영화 ‘검사외전’)과 오지랖 넓은 중년의 아저씨(영화 ‘보안관’)에 이르기까지. 배우 이성민(50)은 장르, 캐릭터에 구애(拘?) 없이 자유자재로 무게를 바꿔왔다. 한없이 묵직한 인물을 그리다가도 바람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인물을 표현하는 것은 이성민의 장기이자 무기였다.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바람바람바람’(감독 이병헌)은 이성민의 ‘가벼움’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 20년 경력을 자랑하는 바람의 전설 석근(이성민 분)이 여동생 미영(송지효 분)의 남편 봉수(신하균 분)를 바람의 세계로 인도하고, 그들 앞에 매력 넘치는 여성 제니(이엘 분)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작품 속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온몸으로 표현해냈다.

“제가 생각했던 석근의 모습은 감독님의 생각과 달랐어요. 외적인 모습이요. 저는 석근이 뭔가 정력이 넘치는 날라리 같은 모습일 거로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댄디한 중년 남자를 바라시더라고요. 저는 구레나룻도 좀 길러 보고 느끼하게 기름칠 좀 하려고 했었는데…. 하하하.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감독님의 판단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석근이 귀엽게 느껴지더라고요. 귀엽게, 잘, 간 것 같아요.”

석근에 대한 이미지처럼 이성민과 이병헌 감독의 호흡이 처음부터 찰떡이었던 건 아니었다. “서로 알아가는 사이”였던 두 사람이 합을 맞추는데 “시간이 좀 걸렸기” 때문이다.

“아내(장영남 분)의 묘에 찾아가서 시각장애인을 만나는 장면을 찍을 땐 ‘이래도 되나?’ 싶었어요. 거북하고 엉뚱한 모습이었는데 완성본을 보니 괜찮더라고요. 감독님이 대놓고 ‘코미디’를 보여주는데 그런 점들이 우려되는 부분들을 많이 상쇄시키는 것 같아요. ‘우리는 리얼리즘이 아닌 코미디’라고 짚고 시작하는 거니까요. 나중에 보니까 딱히 이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영화 '바람바람바람'에서 석근 역을 맡은 배우 이성민[사진=NEW 제공]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병헌 감독의 의도를 깨달은 걸까? 이성민은 남다른 코미디와 리듬감을 자랑하는 이 감독과 ‘합’이 맞아 들어가던 순간을 회상했다.

“정확히 캐치한 건 아니었고 첫 촬영을 마치고 나서 ‘아, 이런 거구나’ 알게 됐어요. 말을 빨리하고 정확하게 하고 여기까지 풀어져도 괜찮다고 하는구나 생각했죠. 첫 장면이 팬티를 널어놓는 장면이었거든요. 초반 3~4회까지는 그랬던 것 같아요. 저랑 (신)하균이가 일찍이 촬영을 시작했고 지효가 가장 늦게 촬영을 시작했는데, (송지효가) 첫 촬영을 마치더니 어리둥절해져서 그러더라고요. ‘선배님 이거 괜찮아요? 이상하지 않아요?’하고요. 저는 그냥 ‘괜찮아질 거야. 익숙해질 거야’라고 했죠.”

석근은 자칫하면 비호감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한 캐릭터다.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면서도 한 번도 안 걸렸다고 자부하는 이른 바 ‘바람의 전설’이지만, 알고 보면 허점 많은 아저씨다. 기혼자들의 이야기고 불륜을 소재로 한데다가 희화화의 우려가 있는 작품과 캐릭터지만 이성민은 자신만의 능청스럽게 석근을 그려내며 인물의 귀여움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문제들을 상쇄한 것은 이성민의 공이 컸던 셈이다.

“석근이 말로 모든 것을 푸는데, 그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불륜에 대한) 행동을 자주 보여줬다면 아내가 죽고 개과천선하는 과정에서 관객의 동정을 받기 쉽지 않았을 거라고 보거든요. 영화를 찍을 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이지만, 영화를 보니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석근의 노출 신이 한 차례 있었는데 감독님이 뺐더라고요. 정말 현명한 선택이라고 봐요. 하하하. 석근이 개과천선하는 모습은 영화의 핵심이라고 봐요.”

석근은 20년간 전 세계를 돌며 롤러코스터를 디자인해왔다. 그 나라에서 만난 여자들에게 영감을 얻어 롤러코스터를 디자인하고 그녀들을 태우는 석근이지만 정작 평생을 함께해온 아내에게는 자신이 만든 롤러코스터를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무심한 남자기도 하다.

“무의식중에 ‘아내는 그럴 거야’하고 넘겨짚는 것들이 있어요. 저도 이제 결혼한 지 19년 차가 되었는데 으레 ‘아내는 그렇겠지?’하고 지레짐작하곤 하거든요. 마누라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하고, 나는 ‘그렇다’고 믿는 거죠. 그 롤러코스터 장면은 오랜 부부 사이의 익숙함과 오해를 짚고 가는 장면인 것 같아요.”

영화 '바람바람바람'에서 석근 역을 맡은 배우 이성민[사진=NEW 제공]


올해로 결혼한 지 19년 차라는 이성민은 영화 속 오랜 부부의 모습에 공감하기도 했다고. 주연배우 중 유일하게 기혼자인 만큼, 작품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하고 있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내랑 부부싸움을 하면 ‘당신은 나한테 이렇게 진지한 얘길 한 적이 있어?’라고 해요. 생각해보니 없더라고. 난 ‘당연히 당신이 알고 있을 줄 알았지’ 하더라고요. 오랜 결혼생활에 대한 오해죠. 물론 우리 집에서는 (부부싸움 할 때) 제가 늘 져요. 언제나 변명만 하죠.”

더불어 그는 석근 캐릭터에 대해 이해가 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제가 유일한 기혼자니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죠. 극 중 대사 중에 ‘난 우리 마누라랑 잘 때, 아직도 키스해’, ‘부부 사이에도 키스를 합니까?’라는 대사가 있는데 미혼자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우리(기혼자)는 논리적인 게 아니라 정서적으로 공감을 하는 거죠. 하하하. ‘무슨 말인지 알겠다’하는 정도. 하균이는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정서가 없는 것 같아.”

미혼자와 기혼자의 반응에 관해 이야기하던 이성민은 “우리 아내는 더 도발적이어야 한다더라”며, 아내가 영화를 본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영화를 딱 보더니 씩 웃으면서 ‘더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애들 같아’라고 하더라고요. 심지어는 ‘미영이 애는 누구 애야?’라는 거예요. 하하하. 여자들이 보는 ‘촉’이 있나 봐요. 저는 거기까지는 미처 못 봤었는데.”

제주도와 부산을 오가며 로케이션 촬영을 한 이성민은 ‘바람바람바람’ 팀에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대장으로 불리더라”는 말에, “애들이 그렇게 불러준다”며 배우들을 가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같이 뭉쳐있으니까 의지도 되고 좋더라고요. 저는 아이들을 형제로 비유해요. 저는 맏이고 하균이는 공부 잘하고 시크한 둘째, 지효는 살림을 다 도맡고 형제들을 다 챙겨주는 셋째, 이엘은 시골서 살면서 ‘난 꼭 서울에 갈 거야’라고 다짐하는 막냇동생 같은 느낌이죠. 그런데 거기에 사촌 동생이 등장하는데 서울에서 온 핸섬한 아이인 거지. 감독님이 딱 그래요.”

영화 '바람바람바람'에서 석근 역을 맡은 배우 이성민[사진=NEW 제공]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성민은 불륜 소재에 대한 우려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 영화의 소재가 문제 되리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다만 사회적으로 예민한 시기다 보니 개봉 준비할 때 많은 신경을 썼죠. 우리 영화는 그런 것과 연관해서 보지 않으셔도 그냥 귀여운 코미디라고 생각해요. 웃으면서 털어내시기에 좋은 영화 아닐까 생각해요. 덤으로 영화를 보면 가족과 연인, 부부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깨닫게 해주니까요. 이병헌 감독의 전작 ‘스물’도 깊게 들어가지 않잖아요. 딱 맥주 마시면서 보기 좋은 영화라고 봐요.”

이성민은 올해 역시 바쁘게 보낼 예정. ‘바람바람바람’을 시작으로 ‘공작’, ‘목격자’, ‘마약왕’ 등 다수의 작품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가 출연하는 영화가 ‘바람바람바람’을 시작으로 다 좋은 결실을 보길 바라요. 그게 올해 저의 목표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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