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확인해라"…청와대 꼭두각시 전락한 외교안보 부처들

2018-04-0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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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준비위 2차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천해성 통일부 차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청와대에 확인해라." 

요즘 외교안보 부처 출입기자들이 출입처에 질문하면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로 남북관계가 '훈풍'을 맞고 있지만, 외교안보 주무부처 분위기는 오히려 더 꽁꽁 얼었다.

4월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직후 "남북문제를 유리그릇 다루 듯 하라'고 주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 때문인지 정부 당국자의 태도는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심지어 '대통령의 입'만 바라본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부처내 업무의욕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특히 부처간은 물론, 부처와 청와대간 사전 조율에도 잡음이 들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무대왕함 파견 논란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오전 베트남·아랍에미리트(UAE) 순방 중 아프리카 가나 해역에서 한국 국민이 해적에게 납치됐다는 보고를 처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다음날 새벽에서야 청해부대를 현장에 급파하라고 지시, 문무대왕함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문무대왕함 파견을 결정한 시점도 문제였지만, 문무대왕함이 출동하게 된 명령·지휘 체계는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청와대에서 군으로 명령이 하달되는 과정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배제됐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정경두 합참 의장에게 직접 문무대왕함의 이동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운 문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면서 군 명령체계가 어그러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행 국군조직법하에서 명령·지휘 체계에서 벗어난 정 실장의 월권행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문이다. 합참 의장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밖에 없다.

청와대에서 문무대왕함의 이동 경로와 도착 일시를 상세히 공개한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는 질타도 쏟아진다. 압박감을 느낀 해적들이 인질을 해치고, 잠적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국민 피랍사건 '엠바고(보도유예) 해제' 논란도 불거졌다.

문무대왕함 파견에 이어 대통령의 '한 말씀'이 외교부가 수년간 유지해온 관례를 깨는 이변을 낳은 것이다.

통상 외교부는 한국인이 해적에게 피랍됐을 경우, 기사 엠바고를 기자단에 요청한다. 기사로 인해 도리어 국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직접 해적과 협상 또는 대치할 경우, 오히려 해적의 협상력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 조치였다.

관련 논란이 불거지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4일 "(엠바고 파기는) 정부의 기존 입장에 따라 결정했다"고 밝히면서도 "그 과정에서 기자단과의 소통이 충분치 못했다는 약간의 흠결이 있었다"며 논란을 사실상 인정했다. 외교부는 대응 매뉴얼 재검토에 들어갔다.

외교부가 청와대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은 일찌기 남북 대화 재개의 조짐이 나왔을때 부터 시작됐다.

평창동계올림픽 계기 마련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북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간 비밀회동에 대한 조율도 외교부가 아닌 청와대와 국정원 차원에서 이뤄졌다.

여기에 외교부는 펜스-김여정 회동일정을 인지하지 못한 반면, 국무부는 사전에 인지한 것으로 알려지며 대미 외교 창구인 외교부 '홀대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 북한과 협상을 조율하는 대북특사단을 비롯, 특사단이 최대 우방국인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을 가질 때에도 외교부는 완전히 배제됐다.

돌이켜 보면 남북회담의 주무부처인 통일부 '패싱(배제)'은 우리 정부가 북한으로 대통령 특사를 보낼 때 이미 확연히 드러났다.

2월 대북 특사단에는 주무부처 장관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배제되고,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들어갔다.

당시 남측 대표단을 맞이 북측 인물이 리선권 조국평화통일 위원장인 것을 감안하면 남측 카운터 파트인 조 장관의 부재는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평양행(行)에 동참했지만, 주무부처 장관급이 아닌 차관급을 보낸 것을 놓고 '부처 김빼기'라는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외교안보 부처들도 이렇다보니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청와대의 '입'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을 하는 과정에서도 잡음은 일어났다. 5일 열리는 실무회담 관련 내용 브리핑이 불과 하루만에 통일부에서 청와대로 뒤바꼈다.

그렇다 보니 통일부는 "실무회담이 의전·경호·보도 부문인 것을 감안, 통일부가 회담내용을 비공개로 한다"고 양해를 구하는 상황으로까지 비화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관례상 정상회담과 관련 일체 공개하거나, 설명하는 사안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결국 내용은 청와대에서 공개하는 식으로 마무리됐다.

현재 외교안보부처는 남북정상회담뿐 아니라, 남북 접촉 관련 모든 사안에 대해 '청와대에 확인하라', '청와대의 지시'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때문에 남북관계 대화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지난 12월 말부터 통일부의 경우 장·차관은 단 한번도 기자들을 상대로 진행상황 배경설명 브리핑이 없었다. 특사단 평양 파견 이후 청와대에서 한 브리핑 외에 당시 동행한 천 차관 마저도 기자들과 만난적은 없다. 

물론 수석대표 회의 등 굵직한 현안이 있은 직후 대언론 공개 브리핑은 있었지만 이 역시도 핵심 쟁점에 대한 내용은 쏙 빠져 있었다. 

이같은 청와대의 ‘광폭행보'에 한 정부 관계자는 "외교·통일부가 정권 초기부터 의욕적으로 일을 벌이려고 했지만, 상황이 뜻대로 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 외에 현 시점에서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전직 관료는 "청와대가 모든 것을 다하면 각 부처가 청와대만 바라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현상은 문 대통령이 '대통령 권력 분산'을 외친 것과도 다소 거리가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때인 2017년 5월 2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행정부내에서는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총리와 장관에게 나누어 함께 책임지는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를 시행하겠다"며 "청와대가 국회위에 군림하지 않고, 부처의 장관이 책임지고 자신의 부처를 이끌어가고 인사도 책임지는 정부를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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