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개봉한 영화 ‘곤지암’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7대 소름 끼치는 장소로 CNN에서 선정한 공포 체험의 성지 ‘곤지암 정신병원’에서 7인의 공포 체험단 기이한 일을 겪게 된다는 내용을 담은 이 작품은 관객에게 익숙한 파운드 푸티지 장르(실재 기록이 담긴 영상을 누군가 발견해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가장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일종)와 유튜버라는 설정을 결합, 트렌디하면서도 클래식한 결과를 끌어냈다.
7명의 신인배우가 직접 영상을 촬영하고 체험하는 형식과 여타 공포영화와는 다른 호흡은 물음표로 시작, 느낌표로 귀결됐다. 공포영화의 또 다른 레퍼런스(참고서). 그 어려운 걸 정 감독이 또 해낸 것이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만나 인터뷰를 가진 정범식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매 작품이 색달랐다. 이번 ‘곤지암’에서 정범식 감독의 인장을 찾아본다면?
이번 작품 속 ‘이종교배’는 무엇인가?
- 유튜브를 즐겨 보는 젊은 세대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생각했다. 그들은 어떤 ‘거리’들을 즐기는 거니까. 형식은 ‘거리’를 즐기는 요즘 방식을 취하돼, 공포효과 측면에서는 고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요즘 공포영화들은 물량으로 밀어붙이거나 남발하고 잔인한 장면을 과시하지 않나. ‘곤지암’은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옛날 영화의 편집 방식으로 조율하고 리듬과 템포를 만들며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세공했다. 서사는 젊은 세대들에게 맞춰 구사하고 서스펜스 조성은 고전주의적인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번 작품도 ‘우려’의 요소가 많았다. 제작진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어땠나?
- 신인 감독의 비애다. 하지만 저는 그 시기는 잘 넘긴 것 같다. ‘기담’의 경우, 사계절 환상신을 넣겠다고 하니 ‘이걸 어떻게 표현할 거냐’며 만류했었다. 그런데 그 신을 찍고 났더니 지금은 투자·제작사에서도 ‘아름답게 구현할 것’이라고 하면 그냥 믿어준다. 자율성이 부여되었다.
‘곤지암’은 그야말로 철저한 계산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신인배우들이 직접 찍기 때문에 계산이 완벽해야 했다. 그 ‘계산’의 득과 실이 있었다면?
- 계획을 100으로 해도 80 이상 채우기 힘들다. 80만 돼도 성공이라고 하니까. 숫자로 말하는 건 어폐가 있겠지만 그 이상 계산대로 나온 것 같다. 신인배우가 연기하면서 100% 완벽할 수 없지 않겠나. 정말 어려웠다. 한정된 시간 안에 (배우가) 3대의 카메라를 운영하는데 동선이 숙지 되어야 (카메라가) 엉키지 않는다. 특히 우리 영화는 끊고 다시 갈 수가 없었다. NG 나면 무조건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한다. 편집에서 좋은 걸 골라 쓸 때 영화는 좋은 것들만 솎으면 되는데 우리는 앞부분은 A가 좋고, 뒷부분은 B가 좋아도 잘라서 붙일 수가 없었다. 그냥 조금 더 좋은 걸 선택해서 썼다. 연기든 컷이든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영화할 때랑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이런 작업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 카메라로 직접 찍으면서 연기 지도를 해야 했다. 연기 밸런스를 지도하면서 동선도 같이 잡는 거다. 우리는 리허설이 없다. 바로 촬영이다. 이걸 매일매일 했다. 동선도 그날, 그날 알려주고 잡아내고…. 하루하루가 어려웠다. 하하하. 거기다 영화 공포신을 막바지에 다 몰아서 찍었는데 스태프들이 지친 상태에서 계속 밤 촬영만 하니까. 정신이 몽롱해지더라. 그래도 다들 잘 마무리 해줘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극 중 정신병원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불릴 만큼 중요한데. 공간은 어떻게 꾸몄나?
- 실제 곤지암 정신병원이 존재하지만, 이미지들을 보면 영화적으로 그로테스크하지는 않다. 우리 영화는 공간이 주인공이고 또 캐릭터다.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상상하며 공간을 만들었다. 집단치료실이나 실험실, 집기실, 목욕실 등 영화적으로 그로테스크(기괴)한 이미지들을 디자인했고, (제작진에) 당부했던 건 사실성에 치중해야 해서 폐원되고 약 40여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걸 잘 표현해달라는 것이었다. 공간을 캐릭터로 보고 리액션 하는 것들을 통해 체험 공포로서의 면면을 보여준 것 같다.
극 중 뉴스 장면이 삽입,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에게 특혜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장면들로 얻는 효과는 무엇인가? 실제로 연관이 있는 건가?
- 허구다. 이런 반응을 유발하려고 넣은 거다. 극 중 공간의 모티브가 된 ‘남양 신경 정신병원’은 96년 폐원되었다. 현대 격변기를 모티브로 잡아서 역사를 허구적으로 덧댄다면 더 진짜처럼 느끼지 않겠나. 그런 뉘앙스들이 전달되고 그걸 기반으로 호러쇼가 펼쳐진다. 사실적으로 결이 살지 않을까 싶었다.
1층부터 4층까지 체험하는 설정이 꼭 게임 같은 구성이다. 각 층에 대한 설정을 설명해준다면?
- 아케이드 게임이라고 하나? 영화로 치면 이소룡의 ‘사망유희’인 거다. 1층부터 4층까지 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402호인데 ‘어떤 형태일까?’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주다가 각기 다른 모습의 402호를 보여준다. 그게 가장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공간이 형태를 세 번 바꿔가며 나오는 거다.
귀신들의 설정은 어땠나?
- 이야기적 설정보다는 이미지로 만들었다. 연출부와 공유하기 위해서 설정한 건 환자 귀신은 70년대 학생 운동을 하다가 고문을 당했다는 설정, 물이 찬 방에서 만난 귀신은 ‘호러타임즈’ 멤버들이 차 안에서 언급한 루머 속 주인공이다. 마지막 원장 귀신은 기록영화에도 나오고 실제로도 등장하니까. 병원복 같은 이미지로 설정했다.
이런 이미지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
- 이번 영화 같은 경우는 특히 고민이 많았다. 첫 번째 공포신이 환자 귀신이었는데 평범한 이미지가 생각났는데 특별한 방식의 동작을 취할 수 없을까 생각했다. 더 좋은 것이 어떤 걸까 고민하다가 계속 찍는 순서를 뒤로 미뤘다. 괜히 있어 보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촬영 직전 샤워를 하다가 환자 귀신의 이미지가 생각났다. (귀신 역할의) 배우를 불러서 40분간 동작을 연습시켰다. 현장 가서 디테일을 잡았다. 나름 팀 내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신이다. 앵글 두 개에 시점 하나로 만들었는데 음악으로 치자면 ‘도’와 ‘미’만 가지고 노래를 만들라는 것과 같다. 나중에 첫 번째 공포신을 편집해 투자사 담당에게 보여줬는데 “‘기담’ 엄마 귀신을 넘거나 그와 같은 급”이라고 하더라. 기대도 크고 자부심도 있는 신이다.
환자 귀신의 경우는 기존 호흡과 달라서 더 무서웠다
- 텐션이 좋다. 여타 공포영화들은 어느 정도 나오면 딱 끊고 호흡이 빠른 편인데 ‘곤지암’은 호흡을 길게 간다. 이것도 일종의 모험이다. 과유불급 아닌가. 공포영화는 더 하느니 덜 하는 게 나은데 나름 배짱을 부린 거다. ‘밀당’(밀고 당기기) 아닌가. 관객들과 ‘밀당’ 하려고 여러 가지 호흡을 바꿨다.
‘곤지암’을 찍으면서 오싹했던 경험은 없었나? 으레 공포영화를 찍다 보면 벌어지는 에피소드라거나
- ‘곤지암’을 찍은 건물이 폐교였다. 우리는 주로 기숙사 건물에서 촬영했다. 아침부터 들어가서 저녁까지 촬영하는데 영화의 설정상 시간적 배경이 밤이어야 하니 건물 창을 다 막아 놨다. 전기도 안 들어와서 완전 암흑이다. 후레시에 의존하고 스모그에 취하다 보니 다들 정신이 몽롱했는데 촬영 막바지에 제작팀에서 ‘여기가 곤지암 정신병원 못지않은 흉가’라더라. 내내 진짜 흉가에서 촬영한 거다.
영화가 스크린X로도 개봉하는데. 일반 2D와 다른 점이 있다면
- 즐길 거리가 더 풍성한 것 같았다. 밀도나 몰입감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일반화면을 추천하고 호러라는 콘텐츠를 즐기고 싶다면 스크린X를 추천한다. 스크린X는 나름 맛깔 나는 장면 연출이 있더라. 새로운 재미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곤지암’을 10분만 보여준다면, 어떤 장면을 꼽겠나?
- 영화가 시작되고 ‘생방송 시작합니다’ 멘트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10분까지를 보여주겠다. 그 10분이 ‘체험공포’의 맛을 주는 것 같다. 이런 식의 샷, 카메라, 연기를 하는구나 알 수 있지 않을까. 체험공포라는 게 이런 거구나 알 수 있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