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기대하고 또 우려했던 ‘7년의 밤’을 움켜쥔 것은 추창민(52) 감독이었다. ‘마파도’를 비롯해 ‘그대를 사랑합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르기까지. 매 작품 따듯한 온기와 인간적 이야기들을 그려냈던 추 감독인 만큼, 처절하고 잔혹한 ‘7년의 밤’이 쉬이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추 감독은 우려와 부담을 이겨내고 ‘7년의 밤’ 깊은 호수 속에 잠겼다. 집요하고, 끈질기게.
지난 28일 개봉한 영화 ‘7년의 밤’은 한순간의 우발적 살인으로 모든 걸 잃게 된 남자 ‘최현수’(류승룡 분)와 그로 인해 딸을 잃고 복수를 계획한 남자 ‘오영제’(장동건 분)의 7년 전의 진실과 그 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그린 작품. 아주경제는 영화 개봉 전, 추창민 감독과 만나 작품과 작품 세계에 관한 깊은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추창민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개봉을 앞둔 소감은 어떤가?
- 마음이 무겁다. 오래간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라 마냥 즐겁지 않다. 스태프들을 비롯해 배우들도 오래 힘들게 작업한 작품이라 그분들께 누가 안 되고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다.
주변 반응은 어땠나?
- 호오(好惡)가 갈릴 것으로 생각하는데, 반응은 최대한 안 보려고 한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마음에 담아둘 것 같다. 가능한 외면 하고 있으려 한다.
소설 ‘7년의 밤’의 첫인상은 어땠나?
- 저는 영화화가 결정되고 소설을 읽게 되었다. 소설로서 충분히 재미를 느끼기보다 영화화에 대한 임무를 띠고 읽게 된 거다. 제목이나 도입부가 뛰어났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점점 ‘이걸 어떻게 영화화하지?’하는 생각을 했다. 책은 재밌었지만, 영화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이유는 무엇인가?
- 주인공이 두 사람인데 두 사람 모두에게 감정 이입하기가 어려웠다. (보통의 영화는) 악이든 선이든 응원하고 감정을 이입해야 하는데 ‘7년의 밤’은 주인공들이 무슨 짓을 해도 이입하고 응원할 수 없더라. 텍스트로서 훌륭하지만, 감정을 얻어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또 이 소설이 각자 시점에서 이야기하는데 다양한 시점은 영화화하기 힘들다는 생각이었다. (영화화에)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
그렇다면 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뀐 순간은?
- 제가 매력을 느낀 부분은 내면에 가지고 있는 인물 개개인의 서사와 악의 이면이었다. 악인들의 심리라고 할까? 악이 파생되기까지의 과정들이었다. 스릴러나 대결보다 심리 묘사에 치중한 것이 그런 이유였다.
‘세령마을’은 ‘7년의 밤’의 또 다른 주인공인데
- 그렇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세령마을에 대한 뚜렷한 구성은 없었다. 어떤 이미지는 확고한데 그것이 구체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이미지를 던진다면 반대하는 의견이 돌아올 것 같았다. 세령마을을 구현하는 게 힘들었는데 아마 구체적 그림은 공간을 찾으면서 구체화한 것 같다. 세령마을의 가장 큰 조건은 수몰된 비밀이었다. 이 영화는 비밀을 찾아가는 이야기니까 비밀스러운 느낌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 손때가 묻지 않은 자연 공간과 오래 방치된 느낌들이 중요했다.
세령마을을 비롯해 미장센이 압도적이었다
- 영화의 흥망성쇠가 여기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원작을 읽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 공간 때문이다. 한국 어딘가에 있을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없는 공간을 보여주는 게 즐거운 일 아니겠나.
관객들이 세령마을의 이미지나 은유들을 찾아가는 것도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이미지들이나 인물들의 이미지가 세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마을과 캐릭터들의 어떤 이미지, 키워드는 무엇인가?
- ‘비밀’이다. 이면이라는 말이 될 수도 있는데 세령이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하고 고양이를 찾아가는 것이나, 물속의 이미지나 인간이 가진 개인의 비밀이라 생각했다. 현수는 아버지에 대한, 영제는 사랑에 대한 결핍을 가지고 있는데 각자 가진 현상이 벌어지기까지의 이면은 무엇이 있을까 살펴보시는 것도 관람 포인트 중 하나일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물속에 잠겨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 영화 말미, 서원이가 물 밖으로 나올 때 토해내는 숨결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영화를 보면 우리는 각자의 밤이 있는 것 같다. 각자 깨치길 바란다. 영화가 시작될 때 검은색 바탕에 하얀색 글자로 ‘7년의 밤’ 타이틀이 뜬다. 그리고 영화 말미는 화이트 아웃되며 반대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7년의 밤’을 거치고 희망까지는 어려워도 작은 빛 정도는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관객들이 외면하고 싶은 밤이더라도 대면해야 한다는 의미다.
작품성 면에서는 만족스럽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 이런 무거운 이야기가 통할까 싶기도 한데
- 즐기기는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든다. 편집을 하면서 몇 가지 편집본이 나왔는데 태생 자체가 이렇게 시작돼 안 그런 척하기가 어렵다. 그럴 바에야 관객의 손을 잡고 외면하고 피하고 싶은 것을 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두 시간 동안 웃고 즐기는 영화도 좋지만 이렇게 힘든 작품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한 장면, 한 장면을 고민하고 끝나고 난 뒤에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이다.
확실히 곱씹을 만한 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 영화 편집을 하면서 ‘잔상’이 많이 남길 바랐다. 어떤 시처럼 곱씹었을 때 나오는 것들이 있었으면 했다. 누군가 이 영화를 ‘재미없다’고 넘길 수 있겠지만, 곱씹어 의미를 발견한다면 더 좋겠다.
매 장면 감정 소모가 컸는데. 추 감독에게 힘들었던 장면은 무엇인가?
- 현수가 댐 위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장면이다. 많은 사람이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류)승룡 씨도 그랬고. 미워하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납득이 안 간다더라. 예전에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어머니께 버림받고 평생을 힘들게 산 남자가 50살이 되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무덤가를 찾아가 엉엉 울더라. 돌보지 않는 무덤에 풀이 잔뜩 피어났는데 그 앞에서 ‘도와달라’고 외치는 게 인상 깊었다. 저주하고 외면했던 어머니에게 부탁하는 마음이 아프고 인상적이더라. 현수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이 든다. 막다른 공간에 이르러 유일하게 빌고 싶은 사람이지 않을까. 허공을 보고 도와달라 외치는 것들. 저는 그 감정을 느꼈지만 배우를 거쳐, 관객에게 전달되기까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 부자(父子) 관계가 특수한 만큼 감정을 이해하는 관객, 그렇지 않은 관객으로 나뉠 것 같다
- 이 영화가 어려웠던 게 보편타당한 감정이 아니지 않나. 일일이 손을 잡고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거나 맞지 않거나 경험하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거다. ‘뭐가 저래’라고 해도 개인에게는 절실하고 꼭 하고 싶었던 장면들이 있었다.
소설과 가장 달라진 건 영제 캐릭터다. 원작 속 영제는 텍스트로는 매력적일 수 있으나 영상으로 구현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 소설 속 영제는 영화적 표현으로는 관습적일 수 있었다. 엘리트 사이코패스는 관객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표현이다. 장동건에게는 그런 느낌이 있는데 안경을 씌우고 머리를 예쁘게 넘긴들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름기 가득하고 누구도 말 섞기 싫은 이미지를 더했을 때 다른 모습이 나올 거로 생각했다.
장동건 캐스팅은 이미지의 전복처럼 느껴지는 데 반대로 류승룡은 클래식한 캐스팅이라고 보이는데
- (류)승룡 씨는 힘이 센 배우라고 생각한다. 제가 생각하는 승룡 씨는 부리부리하고 적장에 가서 목을 베어오는 것 같은 파워풀함이 있다고 할까? 반면 현수는 일상적 인물이고 나약하다. 살을 크게 찌우거나 뺄 필요 없이 흔히 볼 수 있는 느낌이길 바랐다. 외모적으로 바꿀 게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두 광기가 부딪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밀리지 않게 조율하는 작업도 필요했을 텐데
- 두 배우가 만나는 장면은 많지 않다. 각자 연기해왔는데 이전까지는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조절은 편집해서 하면 되니까. 다만 싸움할 땐 진짜로 해달라고 했다. 원수처럼 광기에 젖어야 하니까 봐주지 말라고. 진짜 때릴 순 없지만 때릴 듯 한 감정이길 바랐다.
영화를 10분만 보여준다면?
- 현수의 아버지가 나오는 장면. 우물에 빶니 아버지를 건져 올리는 장면이다. 식상할 수 있는데 많은 사람이 부모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이 있다고 본다. 그게 함축적으로 보이는 장면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피 중, 외면하고 싶은 것.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