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하고 싶어요” “게임 같이 해줘요”…아이도 힘들고 나도 지쳤다

2018-04-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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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기자 은평구 구립푸른빛어린이서 보육교사 일일체험 해보니

1인 20명 담당…소방서 견학 땐 아찔

달래주고 어르고 쉴 틈이 없어 파김치

퇴근 하기 전 어린이집 평가인증 준비

본지 조현미 기자가 지난달 27일 서울 녹번동 구립푸른빛어린이집 희망찬반에서 보육교사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선생님은 이름이 뭐예요?” “여기서 게임 같이해요.”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기자에게 아이들의 질문과 요청이 이어졌다. 친구와 다투다 중재를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7시 25분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있는 구립푸른빛어린이집을 찾았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보육교사 일일체험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기자가 맡은 희망찬반 담임인 이수연 교사가 문을 열었다. 희망찬반은 2012년과 2013년에 태어난 만 4~5세 아동 20명을 돌본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원아와 우리 나이로 6세인 어린이가 10명씩 있다.
가장 먼저 온 아동은 종현(가명)이다. 다른 반에 속한 동생과 함께 오전 8시가 되기 전 어린이집에 왔다. 맞벌이와 외벌이 가정이 절반씩이다 보니 등원 시간에 차이가 있다. 녹번동뿐 아니라 갈현동·응암동 등 인근 다른 동에 사는 어린이도 여럿 있다. 김선미 원장은 “이용 아동의 만족도가 높아 이사하더라도 어린이집을 그대로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오전 9시가 가까워지자 희망찬반 아동 전원이 2층 교실에 모였다. “모두 손을 씻고 오세요.” 희망찬반 이 교사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간식으로 나온 딸기를 먹기에 앞서 모든 아이가 화장실에 다녀오고 손을 씻었다. 이날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간식을 먹었다. 1월부터 계획하던 은평소방서 견학을 가야 해서다. 미세먼지 수치는 높았지만 아이들이 강력히 원해 더 미룰 수 없었다.

외출에 앞서 모든 아동이 마스크를 착용했다. 개개인 이름과 어린이집 연락처가 적힌 명찰도 목에 걸었다. “선생님, 마스크가 잘 안 써져요.” 라희(가명)가 도움을 요청했다. 마스크를 꼼꼼하게 씌워준 뒤 소방서로 가는 차를 탔다.
 

지난달 27일 서울 은평소방서에서 구립푸른빛어린이집 희망찬반 원아들이 지진 체험을 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밖에 나온 아이들은 짝과 손을 잡고 쉴새 없이 떠들었다. 그러다가도 함께 견학에 나선 신나는반(만 3~4세) 동생들을 챙겼다. 소방서에선 지진과 화재 대응 교육이 이뤄졌다. 부엌으로 꾸며진 지진 체험장이 흔들리자 쿠션을 머리에 이고 식탁 밑으로 모였다. 연기로 가득 찬 화재 체험장에선 당황하지 않고 옷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비상구를 찾아갔다. 김 원장은 “어린이집에서 수시로 화재 대피 훈련을 한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었다. 그러는 동안 담임교사와 함께 배식을 준비했다. 오늘 당번인 지나(가명)도 급식장 한쪽에 앉았다. 찰보리밥과 쇠고기사골우거짓국에 두부양념조림·양배추당근볶음·깍두기가 반찬으로 나왔다. “깍두기 몇 개 먹을 거야?” “난 3개.” 지나는 친구들이 답한 수대로 깍두기를 식판에 담았다. 기자는 밥과 다른 반찬 배식을 맡았는데 양 조절에 실패했다. 적지 않은 아이가 밥을 남겼다.

4~5세반은 잠자는 시간이 없다. 점심을 다 먹은 아이들은 소방서에 다녀온 소감을 그림과 글로 남겼다. 완성한 그림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오후 2시부터는 ‘체육’ 특별활동이 있었다. 수업은 나이로 반씩 나눠 이뤄졌다. 오전에 외부 활동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본지 조현미 기자가 지난달 27일 서울 녹번동 구립푸른빛어린이집 희망찬반에서 보육교사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오후 3시 30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인터폰이 울리면 이수연 교사가 보호자를 확인한 뒤 외투와 알림장, 가방을 챙겨 아동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이 교사는 보호자와 인사하며 오늘 아동에게 있었던 일을 자세히 알려줬다. 오후 5시 30분쯤 되자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갔다. 남은 아이들은 같은 층 신나는반 교실로 이동해 종일반 선생님과 놀이 활동을 시작했다. 그제야 화장실에 편히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교사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 스팀 청소기로 아이들이 떠난 교실을 청소했다. 각종 행정업무에 이어 어린이집 평가인증을 준비했다. 이 교사는 “여전히 정해진 시간에 일을 마치거나 휴식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면서 “이러다 보니 막상 본인 자녀는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펴낸 ‘2015년 전국보육실태조사’를 보면 어린이집 보육교사 평균 근무시간은 9시간 36분에 달한다. 하지만 월급은 184만3000원에 불과하다. 근무는 고되고 급여 수준은 높지 않다 보니 사직률이 높다. 2014년 기준 전체 교사의 24.1%가 어린이집을 떠났다. 이 가운데 39.7%는 이직 대신 일을 쉬는 것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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