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7시간 재구성]박근혜,최초신고 후 88분지나 보고받아“전원구조 가능했다”

2018-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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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최초신고 후 27분 지나 TV보고 사고 발생 인지

[사진:위(연합뉴스 제공), 아래(아주경제DB)]

세월호 참사 보고서 조작 의혹을 수사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신자용 부장검사)가 28일 발표한 중간 수사결과로 지난 4년 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던 세월호 참사 발생 후 7시간 동안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지 의혹은 상당 부분 밝혀졌다.

‘아주경제’는 이번 검찰 수사 결과 발표 내용과 그 동안 밝혀진 것들을 종합해 세월호 7시간을 재구성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최초 신고는 참사 당일인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한 단원고 학생이 119로 신고해 이뤄졌다. 즉 대한민국은 이 날 오전 8시 52분부터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음을 인지한 것. 이어 오전 8시 54분 단원고 학생-119-목포해경 3자 통화가 이뤄졌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세월호 참사 최초신고

청와대 국가안보실 산하 위기관리센터는 이 날 오전 9시 19분쯤 언론사 TV 속보를 통해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음을 처음 알게 됐다. 이어 9시 24분쯤 청와대 문자메시지 발송시스템을 통해 메시지를 발송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실, 국정원 모두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9시 19분 YTN 보도를 보고 사고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이 최초 신고가 있고 27분이 지나서야 TV 뉴스를 통해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음을 알았던 것.

이후 센터는 해양경찰청 상황실을 통해 선박 명칭, 승선인원·출항시간·배의 크기, 구조 동원 현황, 구조 인원수를 차례로 파악했다. 9시 57분쯤 '구조된 인원 56명이 사고지점 북쪽 4마일 거리에 위치한 서거차도로 이동할 예정'임을 확인해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완성했다.

김장수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오전 10시 사건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전달받고 즉시 보고하려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집무실이 아닌 관저의 침실에 있었다. 침실에서 박 전 대통령이 자고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김장수 당시 실장은 관저에 있는 박 전 대통령에게 상황보고서 1보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받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이후 안봉근 당시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해 “대통령이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대통령 보고가 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신인호 위기관리센터장에게 상황보고서 1보를 완성해 박 전 대통령이 머물던 관저에 전달할 것을 지시했다. 신 센터장은 10시 12분쯤 상황보고서 1보를 완성하고 상황병을 통해 관저 전달을 지시했다.

이에 상황병은 관저까지 뛰어가 10시 19분쯤 내실 근무자인 김모씨에게 보고서를 전달했고 김씨는 별도의 구두 보고 없이 상황보고서를 박 전 대통령의 침실 앞 탁자에 올려뒀다.

김 전 실장은 위기관리센터로 내려가 박 전 대통령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안봉근 비서관이 10시 12분쯤 이영선 전 경호관이 준비한 승용차로 본관 동문을 출발해 관저로 갔고 10시 20분쯤 관저 내부에 들어가 침실 앞에서 수차례 부르자 박 전 대통령은 밖으로 나왔다. 검찰은 이 때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상황보고서 1보를 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의 중요한 퍼즐이 하나 맞춰진 것이다.

즉 당시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였던 박근혜는 최초 신고가 있고 1시간 28분이 지나서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음을 최초로 보고받은 것이다.

안 비서관은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한다”고 보고했고 박 전 대통령은 “그래요?”라며 침실 안으로 들어가 오전 10시 22분 김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원 구조 가능했는데도 수백명 죽은 참사”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실장에게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여객선 내 객실, 엔진실 등을 철저히 수색해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최초신고 후 1시간 30분이 지난 후 나온 이 지시는 전혀 쓸모 없는 지시였다. 당시 세월호는 구조가 불가능할 정도로 거의 완전히 침몰한 상태였다. 당시 청와대가 세월호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으로 잡고 있던 시간은 오전 10시 17분.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의 또 하나의 중요한 퍼즐인 박 전 대통령이 이 날 오후 5시 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방문하기 전 무엇을 했는지도 일부 밝혀졌다.

박 전 대통령은 오전 10시 30분쯤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 지시를 내리고 구조 문제에 대해 오전 내내 별도의 연락을 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당시 한 일은 인후염에 걸려 오전 10시 41분쯤 간호장교로부터 의료용 가글액을 전달받은 게 전부.

박 전 대통령은 오후 2시 15분쯤 청와대를 찾아온 최순실을 관저에서 맞이했다. 이미 방문이 예정돼 있었으므로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정호성·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도 관저에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씨가 창와대에 도착할 때까지 3시간 정도 박 전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는 아직도 풀지 못한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문고리 3인방은 관저 내실에서 40분 가까이 회의를 했다. 이 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의 중대본 방문이 결정됐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오후 2시 53분쯤 윤전추 전 행정관을 시켜 박 전 대통령의 머리 손질을 담당하는 이들을 청와대로 급히 불러들였다.

머리 손질 담당자들은 오후 3시 22분쯤 청와대로 들어왔고 머리 손질을 마친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선 것은 오후 4시 33분쯤이다. 박 전 대통령은 중대본에 오후 5시 15분쯤 도착했고 오후 6시에 관저에 복귀했다. 당시는 세월호가 수면 위에 선수 일부만 남은 채 선체 대부분이 물밑으로 가라앉고 수백명이 죽은 후였다.

세월호 유가족 '창현 아빠' 이남석 씨는 28일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번에 드러난 세월호 참사 후 7시간 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 것을 보면 그는 매우 국민을 우습게 알고 직무에 불성실하게 임했음을 알 수 있다”며 “정상적인 청와대라면 세월호 참사 당일 최소한 오전 9시 이전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이에 대한 보고를 받았어야 한다. 이 때 해경에 세월호에 진입해 승객들을 나오게 하고 3함대를 출동시키는 등의 적절한 지시를 했었다면 세월호 승객 전원을 구조했을 것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7분쯤이면 승객들 전원을 세월호에서 나오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참사는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충분히 탑승자 모두를 구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수백명이 죽은 참사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라며 “국가정보원과 청해진해운과의 관계도 밝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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