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역삼로에 위치한 소피스갤러리에서는 3월 24일부터 5월 4일까지 이헌정 작가의 초대전 '세 개의 방'전이 열린다.
'세 개의 방'은 표현 그대로 전시 공간을 3개로 나눠 각각 '상자의 방', '아트퍼니쳐의 방','풍경의 방'으로 구분한다.
가로와 세로, 높이는 거의 3m나 되는 입방체 작품은 겉은 나무로 제작하고, 안은 도기로 돼 있다. 무게는 현장에서 측정하기 힘들 정도다.
이헌정 작가는 "도예가로 활동을 시작했고 흥미가 생겨 조각과 건축도 공부했는데 그런 것들이 하나의 작품에 녹아들어 간 작품"이라며 "특성, 규모 면에서나 기술적인 면에서나 굉장히 욕심을 내서 시도한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입방체 모양을 운송하는 크레이트(crate) 박스처럼 만들어 겉은 화려하지 않게 표현하고 안은 화려하게 표현해서 안을 주목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도기로 제작한 안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양의 조명이 있고 성인 4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안에서 밖으로 난 깔때기 모양의 창도 특이했다.
"창문은 조형적인 재미도 있고 너무 잘 보일 필요도 없다" 며 "일부로 안이 연상되게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려고 밖에서는 좁게 보이게 설계했다"라고 이 작가는 부연했다.
방 중앙에는 미국 뉴욕서 전시했던 도기로 만든 거대한 '와인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작가는 "뉴욕서 전시하고 들어온 작품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싶어서 전시했다" 며 "그릇, 테이블, 와인잔, 촛대 등 도자기로 된 와인 테이블이다. 정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물을 하얀색 도자기로 제작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거대한 도기 작품을 만드는 법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손으로 빚어서 만들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상자들의 방에는 거대한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풍경이 있는 박스'처럼 보물상자 같은 작품도 있다.
이 상자를 겉에서 보면 볼품없고 어딘가 부서져 있는 초라한 상자다. 하지만 부서진 부분에 눈을 맞추고 들여다보면 상상도 못 할 장면이 연출된다.
이 작가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데 외부공간 말고도 내부 공간이 존재하는 작품이다" 라며 "기대하지 않았다가 내부를 보고 놀라는 예기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아트퍼니쳐의 방'은 도기로 만든 가구를 배치했다. 작가는 여러 가지 조각 설치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아트퍼니쳐라고 설명했다.
'풍경의 방'에는 갤러리의 공간이다. 관람객이 아닌 조각 작품들이 갤리리가 돼서 자신의 모습을 보거나 풍경을 감상한다.
하지만 조각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하나씩 어긋나 있다. 균형이 안 맞고 비틀어지고 왜곡돼있다. 심지어는 양팔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 작가는 "조각들은 자화상인데 저의 사는 모습에서 크게 멀지 않은 얘기들이다. 예술가의 모습이 정서적으로 불안한 존재 같은 생각이 든다" 라며 "한 작품의 오른쪽은 분노하고 있는 손이고 왼쪽 손은 무기를 들고 세상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약간 돈키호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합리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이헌정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도예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한 뒤, 경원대학교에서 건축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30회의 개인전과 120회가 넘는 단체전을 했고, 1992년 서울현대도예공모전 특선과 2005년 서울시장 표창장을 받았다.
흙을 기본으로 도예와 조각, 건축이 이헌정 작가를 만나 어떤 종합 예술로 승화하는지 '세 개의 방'전을 통해 확인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