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내야/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거다오(···)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가시내야/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게/손때 수줍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이용악 시(詩) ‘전라도 가시내’ 중)
나라를 일본에 빼앗겨 ‘무쇠다리를 건너 북간도로 온’ 함경도 사내와 ‘전라도 가시내’가 대폿집에서 만났다. 사내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주겠다고 한다. 나는 궁금하다. 휴대폰도, 인터넷도, 심지어 고속도로도 없었던 시대에 함경도 사내는 과연 전라도 사투리를 알고는 있었을까? 함경도 사람이 경상도 사람을 만나면 ‘그게 무엇입니까?’ 질문을 사이에 두고 ‘뭐꼬?’와 ‘무시기?‘를 서로 몰라 ‘뭐꼬가 무시기?’ ‘무시기가 뭐꼬?’를 반복하던 시절에 말이다.
이런 판국이라 ‘각 지방 사투리도 보존하고 기억해야 할 우리 고유의 문화이자 자산’임을 표방하는 행위들은 공허한 메아리를 넘어 자칫 국수주의 같은 지역주의로 폄하된다. 언어가 서울로 표준화되니 시골 사투리가 담고 있었던 고유의 살가운 정서들도 영영 사라져간다. 전라도 사람들 입에 남아 있는 ‘어떤 말’ 하나가 그렇다. ‘잉’이라는 보조사인데 함경도 시인 이용악은 전라도 가시내가 말 끝마다 붙이는 ‘잉’ 하나가 가진 그토록 넓고, 융숭한 뜻의 전모를 알았을 리 없다. 편의상 ‘잉’이라고 쓰긴 썼지만 전라도 사람들의 실제 발음을 듣자면 그 소리는 ‘잉’이 아니다. ‘이’도, ‘잇’도, ‘인’도 아니다. 그들 사이에 끼인 미묘한 발음의 소리다. 흔치 않게 표음문자인 한글로도 정확히 표기할 수가 없다.
전라도 사람들의 ‘~합시다, ~하세, ~해라’ 등 청유형이나 명령형 문장의 끝에는 어김없이 ‘잉’이 붙는다. “모다 항꾸네 할라믄(모두 함께 하려면) 탁구 말고 야구로 합시다잉. 우리 가찹게(친하게) 지내세잉. 밥은 묵고 댕개라(다녀라)잉. 잘 가라잉. 아따, 거시기하요잉” 식이다(대부분 전라도 사투리로 알고 있는 ‘거시기’는 표준말이다). 이때의 ‘잉’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맥락에 따라 부탁, 명령, 애정, 염려, 위로 등 다양한 뜻을 담는다.
‘잉’은 또 말하는 이의 진의(眞意)에 따라 억양도 살짝 달라진다. 위로의 뜻일 때는 낮고 길게 이어지나 위협이나 경고의 뜻일 때는 강하면서 끝이 올라가는 식이다. 이와 비슷한 어휘로 ‘~해라와’의 ‘와’가 있는데 가까운 사이(혈육)에 염려하는 뜻이 ‘잉’보다 더 강한 경우가 많다. 문장 끝 한 개의 어휘로 말하는 이의 말로 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까지 전달하는 기능이 사투리란 이유로 외면되기엔 그 가성비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전라도 섬에서 서울의 대학에 입학하면서 처음 서울에 왔던 나는 다른 지역 학생들과 사투리로 인한 소통 장애가 잦았다.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빠XX’처럼 같은 단어지만 뜻이 완전 다른 비속어의 경우 예기치 않게 큰 오해도 생겼다. 고향에서는 반 존대어로 쓰이는 호칭 ‘자네’ 역시 하대(下待)의 뜻으로 오해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투리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를 풀고 나서 서로 웃던 그때가 국민 모두 ‘서울말’에 익숙한 지금보다 더 살갑고 정겨웠었다. 안 그럽디요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