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금융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19일 관련업권에 따르면 국세청은 차명계좌를 보유한 전(全) 은행에 예정청구를 했다. 예정청구 대상에는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외에도 다른 이들의 차명계좌도 모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과세 당국은 차명계좌에서 이자 및 배당소득에 90% 중과세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예정청구는 이러한 이자소득에 대한 중과세를 얼마 청구하겠다고 미리 통보한 것이다.
현재 예정청구 통보를 받은 금융사들은 금액이 맞는지 분주하게 확인하고 있다. 확인 작업을 끝내고 결과를 통보하면 향후 국세청이 세금을 청구할 예정이다.
금융사 관계자는 "예정청구를 받았고 금액이 맞는지 확인 중이다"며 "예정 청구된 계좌는 이번 법제처 해석에 해당하는 계좌가 아닌 이전에 발견된 계좌들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차명계좌 전반에 대한 추징세를 공문으로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공문을 받은 일부 은행들은 난감한 모습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서 담당 부서에서 검토 중이다"며 "계좌를 개설하고 다른 사람이 본인의 계좌를 사용하도록 했다면 이는 계좌를 빌려 준 사람의 책임이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법제처의 해석에 해당하는 차명계좌를 개설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주장했다. 금융실명법이 실시된 1993년 8월 12일 이전에 개설됐지만 이건희 회장 실명으로 전환하지 않고 삼성임직원 명의로 전환된 계좌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시행일 기준시점(1993년 8월 12일)의 계좌 원장을 보유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검사를 통해 차명계좌 개설 사실을 확인하면 얼마든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셈이다.
은행 관계자는 "해당 시점의 전체 기록을 갖고 있긴 하다"며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보유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기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현재 법제처 해석에 해당하는 것으로 드러난 계좌는 총 27개다. 이들 계좌는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4개 증권회사에서 개설했었다. 그러나 이들 증권사들이 계좌 원장을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어 사실상 과징금 부과가 어렵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TF를 꾸리고 3월 2일까지 이들 4개 증권사에 대한 특별검사를 통해 금융실명제 시행일 기준의 금융자산 금액을 확인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번 검사가 보여주기 식으로 끝난다면 은행에서 추가 차명계좌가 발견돼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형평성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증권사에 대한 검사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용진 의원은 "이번 TF는 실무인력이 10명에 불과하고 2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만 운영한다"며 "요식행위로 끝나지 않기 위해 코스콤이나 예탁결제원에 대한 실태조사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