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당시 사업총괄 부사장)는 지난해 11월 '지스타 프리뷰' 간담회에서 '야생의 땅: 듀랑고(이하 듀랑고)'에 기대가 크다며 이 같은 견해를 밝혔습니다.
길어야 3년에 그치고 마는 모바일 게임을 온라인 게임처럼 10년 이상 수명을 유지하는 장기 프로젝트로 개발하고자 하는 포부가 컸는데 그 첫 단추가 듀랑고라는 얘기입니다. 넥슨만의 경쟁력과 노하우가 응집된 이 게임으로 모바일 게임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듀랑고는 전례없던 '개척형 오픈월드 MMORPG(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장르로 유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넥슨의 간판 온라인 PC 게임 '마비노기', '마비노기 영웅전' 개발을 주도한 이은석 넥슨 왓스튜디오 프로듀서가 5년간 심혈을 작품이라는 점에서 올해 최고의 대작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평가가 높았습니다. 적어도 정식 오픈을 하는 25일 오전까지도 250만명의 사전 예약자들은 부푼 기대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은석 프로듀서가 듀랑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시스템 오류와 접속 지연, 서버 점검 등의 문제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사과와 해명을 내놓았으나 논란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27~28일 주말에 신규 서버가 추가되면서 접속 지연에 대한 일부분 숨통이 트였지만, 여전히 잦은 오류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출시 이후 일주일 동안 점검이 11회 이상 이뤄지면서 '점검의 땅', '오류의 땅', '만명의 땅', '존버의 땅' 등 듀랑고를 조롱하는 글들이 도배를 이루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듀랑고는 현재 매출 4위까지 오르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듀랑고의 이번 논란이 '노이즈 마케팅' 차원에서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넥슨이 게임사 1위 업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듀랑고 사태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국내 대표 게임사가 출시 1주일이 되도록 접속 불안을 완벽히 해내지 못하면서 이미지 추락은 물론, 신뢰에 금이 갔기 때문입니다.
구글플레이 게임 순위만 봐도 듀랑고는 인기 1위에 올랐지만 평점은 2점 초반에 불과한 상태입니다. 비록 수 많은 사람이 게임을 내려받았지만, 넥슨에 대한 유저들의 불신이 고스란히 반영된 대목입니다. 넥슨이 2016년 출시했던 온라인 FPS게임 '서든어택2'의 불명예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당시 서든어택2는 게임성과 선정성 논란에 출시 23일 만에 서비스를 조기 종료한 바 있습니다.
듀랑고의 준비 부실로 이정헌 신임 대표는 물론, 넥슨 경영진과 개발진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막연히 긴급점검이라는 공지로만 일관하며 유저들에게 기다려달라는 안일한 태도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초기 서비스부터 삐걱되고 있는 이 게임이 10년은 커녕 조기에 서비스가 종료되는 것 아니냐는 내부적 불안감도 감지되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풍부한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5년이 넘는 시간을 들인 개발자들의 공(功)이 무색해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클 따름입니다.
삼성전자는 2016년 10월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을 신속히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고동진 사장은 700여명 개발자와 함께 4개월을 보내며 수습을 위해 전면에 뛰어들며 논란을 빠르게 잠재웠습니다. 고 사장의 발빠른 대처에 "역시 삼성"이라는 호평속에 '1등 기업' 이미지를 다시금 각인시킨 바 있습니다.
게임업계 맏형이자 1등 기업인 넥슨이 되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선두 기업의 가치는 '매출'이 아닌 '신뢰'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한번 등을 돌린 민심(民心)은 결코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시험대에 오른 듀랑고가 '기회의 땅'이 될지 '위기의 땅'이 될지, 넥슨의 향후 행보가 궁금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