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준마(駿馬) 여부를 판가름하는 요인은 그 힘과 숙련됨에 있지, 멋진 안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나마 동물을 관찰할 때는 오감을 열어 본질을 예의주시하려 애쓰지만 왜 유독 사람에겐 인색하고 거칠까?
18세기 조선의 학자 권상신(權常愼)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 그는 <나귀와 소(驪牛說)>라는 작품에서 “사람들이 소를 천시하고 나귀를 중시하는 것은 그 외모 탓일까?”라고 묻는다. 즉, 의관을 갖춰 입은 이가 잘 꾸민 나귀를 타면 모두들 ‘나귀가 참 아름답다’라고 말하지만 쟁기를 멘 소를 웃통 벗은 이가 끌고 가면 모두들 ‘소가 참 바보 같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만들어낸 차등에 결국 제 스스로 속는 역설을 탄식한다.
시공을 달리함에도 몽테뉴와 권상신은 모두 외피와 본질에 대해 고민한 셈이다. 처음엔 동물 이야기로 시작해 사람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그 기준의 문제로 접근했다. 부와 권력으로 표면화된 서열, 이는 종종 사람 본연의 내재적 가치를 가려버린다. 섣부른 평가는 관계의 차등과 단절, 박탈감을 빚어내며,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고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