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지족상락(知足常樂)’이라는 말이 있다. 만족할 줄 알아야 늘 즐겁다는 뜻이다. 제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심을 없애 내면의 안정과 평화를 얻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이 원전이다.
그러나 마음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과 현상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 이 ‘지족’은 별로 효용이 높지 않다. 오늘 꺼내려는 이야기는 한국과 중국의 인문교류다.
인문(人文)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모든 자취를 일컫는 말이다. 한국과 중국이 서로의 인문을 더 깊이 알아가려면 ‘지족’보다는 ‘지부족(知不足)’이 더 필요하다.
수교 25주년을 넘긴 한·중 관계는 이제 성숙한 발전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는 질문 앞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은 선뜻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적어도 필자 생각에는 그렇다. 한국인은 중국인을 잘 모르고, 중국인 또한 한국인을 깊이 이해할 생각이 별로 없다.
한국인이 중국인을 보는 시선은 몇 가지 편견에 머물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상을 꼽으라고 한다면 '장궤'(掌櫃, 돈 궤를 가진 사람·주인장이라는 의미)를 들 수 있다. 100여년 전 한국에 머물던 화교, 그 중 음식점 등에서 카운터 금고를 맡아 돈 관리에 열심인 중국인의 모습을 지칭했던 말이다. 돈 밝히고, 의심 많은 중국인에 대한 인상을 담고 있다.
중국인 또한 한국을 열심히 이해할 생각이 별로 없다. 한류(韓流)와 대표적인 한국 상품들에 반짝 기울이는 호기심 외에는 한국을 그저 중국의 지배를 고맙게 받았던 속국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一衣帶水'(일의대수)나 '脣亡齒寒'(순망치한) 등의 수식으로 가까운 지리 관계를 형용키도 하지만 중국인 마음 속의 한국인은 대개 ‘별안간 돈 좀 번 이웃’ 혹은 ‘예전의 우리 번방'(蕃邦·오랑캐의 나라, 속국) 정도로 인식하는 대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인상과 착각을 없애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 바로 서로의 인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인문을 이해하면 한국과 중국은 각자가 쌓아온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한국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반도형 국가로 오랜 기간 처절한 생존 투쟁을 거쳐 오늘날 세계적인 무역·경제 국가로 자랑스럽게 올라섰다.
중국 또한 매우 다양한 문화를 바탕으로 오래 전부터 문명의 씨앗을 키웠고 오랜 전쟁과 재난의 고난을 딛고 바야흐로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인문은 이런 역사 전개의 과정에서 매우 단단하게 쌓인 상태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한자세계가 지닌 독특한 지혜의 맥락을 배울 수 있고, 중국은 한국으로부터 대륙과 연륙(連陸)했으나 더 넓은 해양으로 뻗어갈 수 있는 솔직한 감성과 동력(動力) 등을 흡수해 자신의 문화적 발전을 위한 토대로 삼을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대륙의 중국과 해양성이 강한 한반도의 문화적 교류는 충분히 상보적(相補的)이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은 서로의 인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교류를 더 가속화하고 심층화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만족함을 알아 멈출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면 좋지도 않다. 노자의 ‘지족’에 관한 충고는 이 분야에서 통하지 않는 얘기다.
수교 25주년이지만 한국과 중국의 인문교류는 2016년에야 위원회를 만드는 등 이제 막 걸음을 뗀 상태다. 서로를 헤아리는 데 지금까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음을 깨달아야 한다. 한·중 간 인문교류는 '지부족상락(知不足常樂)'이라고 해야 옳다.
필자: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