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거제동 할머니들의 "엎어질 공동체 밥상"...지원책 "NO"

2017-12-1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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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로 상권 침체... 매일 점심 먹으며 서로 안부 챙겨... 고독사 '예방'

'모임 장소'인 옷가게 폐업 위기, 경로당은 대안으로 '글쎄'

10여 평 남짓한 한 옷가게에는 평균 70세가 넘은 할머니들이 10년째 매일 점심마다 자발적으로 식사 공동체를 이루며 지내고 있다.[사진=거제 4동 이정자씨 제공]


"10년 동안 같이 밥 먹고, 이야기도 하고, 친자매나 다름 없지예. 여기는 고독사 같은 건 없지요. 근데 이 사랑방이 없어진다하니, 밤에 잠이 안 오는 거라 걱정이 돼서..."

지난 14일, 부산 연제구 거제 4동 거제해맞이역 부근 골목 시장의 한 옷가게에는 평균 70세가 넘은 할머니들로 북적인다. 매일 점심때면 집에서 싸 온 밑반찬에, 밥, 국을 한데 모아, 좁은 가게에 옹기종기 모여 점심식사를 해결한다.
점심 후, 할머니들은 나물도 다듬어 주고, 심심하면 '고스톱' 한판도 벌어진다. 자식 이야기, 집안 이야기 등 소소한 일상이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위안이 된다.

'밥상 공동체'라고 부르는 이 모임의 반장격인 이정자(75.여) 씨는 "오전부터 하나둘씩 이곳에 모여, 식사도 준비하고, 밤새 안녕했냐며 안부도 묻는다. 그냥 밥 한 끼 먹자고 한 것이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고 이 모임을 설명했다.

또 다른 이들은 이 모임을 '노노(老老)셰어'라 칭한다. 할머니들끼리 밥을 먹으면서 공간을 공유하며, 서로를 품어주는 어떻게 보면 할머니들의 '사랑방'이자 '둥지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 모임은 폐암으로 남편을 잃은 할머니 한 분이 두문불출하자, 이웃에 살던 할머니들이 '얼굴이라도 보며, 점심이라도 먹자'고 하나둘 모인 것이, 현재는 약 20여 명으로 늘어났다.

거제동 골목 시장 10여 평 남짓한 '옷 가게'는 매장 오픈과 동시에, 할머니들의 '출근(?)으로 시끌벅적하다. 거제 4동 골목 시장과 아무런 상관없는 재개발로 인해 이곳 상권은 거의 죽은 곳이나 다름없다. 이런 곳에 할머니들의 등장으로 제법, 활기가 넘친다. 점심때면, 누가 왔는지, 안 왔는지, '출석 체크'에 여념이 없다.

이들에게 점심식사에 오지 않는 할머니는 적색경보다. 바로 전화를 해 보고, 집으로 찾아간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하는 걱정을 안은 채.

실제 4년 전엔 한 할머니가 뇌경색으로 홀로 화장실에 쓰러져 있는 걸 노인들이 직접 발견해 119에 신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곳은 할머니들에게는 일상의 전부가 되어 버린 곳이기도 하다.
 

올 초부터 거제2구역 재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골목 시장 인근 상점이 잇따라 문을 닫을 정도로 위축됐다[사진=거제 4동 이정자씨 제공]


그러나, 이곳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내년부터 월세를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통보 때문이다. 올 초부터 거제2구역 재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골목 시장 인근 상점이 잇따라 문을 닫을 정도로 위축됐다. 한창 때는 80여 명으로 구성된 상인회가 있을 정도로 번창했지만, 그 상인회도 얼마 전 해산됐다. 할머니들의 모임 장소였던 쌀가게는 올 9월 폐업했고, 그 후 현재의 옷가게가,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이정자 씨는 "내년 초까지 월세 10만 원을 더 올려달라는 데,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며, "당장, 문을 닫을 지경이다. 문을 닫게 되면 이 할머니들이 갈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 옷가게가 사라지만, 할머니들은 거제4동에 있는 경로당으로 가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옹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재개발 철거지역과 맞닿아 있어 안전상의 문제도 있다. 인접 경로당으로 가려고 해도, 할머니들의 도보로는 2~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다른 동네 사람이라고 차별대우를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모임의 한 할머니는 "솔직히, 이곳이 없어질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월세도 문제지만, 우리가 갈 곳을 따로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제구청 관계자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재개발조합에서 추진 중인 경로당으로 가시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할머니들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거제 4동 동사무소 관계자도 "현재로서는 대체 경로당이 대안이다. 자체 모임에 대한 지원책은 없지만, 할머니들 개인에 대한 복지 지원책이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거제 4동 골목 시장 할머니들의 놀이터인 이곳에는 약 20여 명이 드나든다. 부산시가 고독사 예방을 위해 동 사무소에서 전수 조사를 실시한 이곳 할머니 중 고독사 관리 대상은 단 2명뿐이다. 나머지는 할아버지가 계시거나, 가족, 그리고 가정형편이 좀 더 나아서, 그리고 타 동 사람이라는 이유로 리스트에서 제외됐다. 실제로는 혼자 사시거나, 거의 독거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더 많지만, 주민등록상 등기되어 있는 서류상 대상자만 관리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부산 지역 곳곳에 주거하고 있는 차상위층, 저소득층, 독거노인 등의 실제 생활을 살펴보면, 고독사에 노출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노인들이 노인들을 케어하는 '노노(老老) 케어'가 대세다. 부산시 '다복동' 사업에서도 강조하는 것이 바로 마을 공동체이다. 서류상의 공동체 결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머니들이 서로 안부를 챙기고, 얼굴을 보는 '밥상 공동체' 모임이 'IOT'와 통신이 결합된 최첨단 고독자 관리시스템보다 훨씬 더 빠르고 안전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당장 내년 1월 초쯤이면, 이곳, 옷가게가 사라질 수도 있다. 관할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도 별다른 대책이 없자, 할머니들의 '밥상공동체'를 지원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청년들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할머니 밥상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모임의 한 관계자는 "노인 복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무엇이 진정한 복지인지를 생각할 시기"라며, "거제동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식으로 풀어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향후 할머니들의 지원 방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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