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종로구에 위치한 아주경제 본사에서 본지와 만난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정책연구소장은 중국이 바다에 공(功)을 들이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양 소장은 우리나라 해양정책 분야의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양 소장은 미·중 간 동북아 지역해 갈등과 대립구도의 본질을 ‘패권경쟁’으로 규정했다.
“미국이나 중국은 지금 지역해에서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중국은 대양진출권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명확하게 힘을 투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겁니다. 첫 단계가 지역해 안정이고, 그 다음이 지역해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 확보, 그 다음이 대양 진출입니다. 지역해의 안정적 통제와 해군력 증강을 통해 미국과 힘의 균형까지 노리고 있습니다. 이미 그렇게 큰 그림을 다 그려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1982년 채택된 유엔해양법협약(1994년 발효)이 미·중 간 해양 갈등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 양 소장의 설명이다. 이 협약으로 12해리(1해리=1.852㎞)의 좁은 영해만을 가지고 있던 연안국들이 200해리까지 배타적 경제수역(EEZ·Exclusive Economic Zone)을 갖게 되면서 갈등이 생기게 된 것이다.
특히,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기존에는 어떤 바다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확보돼 있었지만 협약이 발효된 이후 해양공간 이용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
양 소장은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 남중국해”라며 “연안국으로부터 200해리까지의 모든 자원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인정하는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의 군사 활동에 대한 논쟁이 갈등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남중국해에 대한 제해권 확보를 통해 자국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중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
그는 “양국은 어디까지 건드리면 상대가 행동을 보일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계속 서로를 자극하면서 시뮬레이션하고 있다”며 ‘강대국의 계산법’을 설명했다.
양 소장은 “중국은 세계경영이라는 그랜드 전략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육상이 아니라 해양이 핵심이 돼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며 “중국에게 해양공간은 힘을 펼칠 수 있는 플랫폼이자 국가 핵심이익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양 소장은 또 “미국과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갈등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반드시 이 틀을 깨고 빠져나와야 일대일로 전략을 성공시킬 수 있다”며 “지정학적으로 핵심 연결고리들을 다 꿰어야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가 성사되는 만큼 (중국의) 힘이 받혀주지 않으면 일대일로의 성공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양 소장은 이와 관련, “중국은 지금 일대일로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해양 패권을 놓칠 수 없는 입장이면서도 지역해 거점을 중국에 빌려줄 국가들과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며 “신뢰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주변국들에게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하며, 수학의 미분 적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야만 G2든 G1이든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해양 패권 추구와 주변국들과의 신뢰구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지만 쉽지 않은 실정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이어도 등 군사 활동을 할 수 있는 해양공간들을 절대 양보할 수 없고 반드시 지켜야 할 마지노선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 소장은 “중국은 이미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힘을 바탕으로 해양에 대한 중요성을 국가 전략의 상위에 올려놓았다”며 “그러나 해양의 영역이 과거처럼 절제와 자제의 영역이 되면, 궁극적으로 중국이 2030년도에 이루고자 하는 일대일로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양 소장은 이와 관련, “중국의 해양 전문가들과 협력주도 전문가들, 군부 쪽이 만나면 마지막 결정권을 갖는 쪽은 언제나 군부 쪽”이라며 “사실 중국에 해양 정책이 있다고는 하지만 해양 정책의 최상위 결정은 언제나 군사적 이익과 연계된다”고 말했다.
미·중 양국 간의 해상 충돌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양 소장은 “충돌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그 때의 행위 주체는 중국입장에서는 군이 아니라 해경선박이거나 민간어선이 될 것”이라며 “중국은 이런 저런 상황에 대비해 조치를 다 해놓고 있어 전면적인 군사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황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한·중 간 해양 갈등과 관련, 양 소장은 “황해와 동중국해에서 가장 넓은 해역이 360해리여서 한·중 양국은 서로 200해리를 따로따로 가질 수 있는 해역이 없다”며 “그래서 중간에 선을 그어야 하는데 거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우리의 경우는 양국이 서로 합의되지 않으면 중간선 밖에서는 관할권 행사를 하지 않는 규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그런 규정이 없어요.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은 200해리까지라는 규정만 있지 실제 실무적으로 적용할만한 자기제한 조치가 없어요. 그러니까 중국 입장에서는 ‘다 내 바다’라고 해석을 하는 겁니다. 우리로 봐서는 불법 조업도 그들로 봐서는 불확정 공간에서 중국의 참여이익이 여전히 있는 수역인 거죠.”
양 소장은 “유엔해양법협약이 200해리라는 넓은 권리를 부여한 것은 한·중 양국에 갈등 요소를 준 것이 아니라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으라는 과제를 준 것”이라며 “사실 황해는 우리 국민들이 민감해하는 불법 조업이라는 요소가 끼어 있기 때문에 폭발력을 갖는 것이지, 실제로는 한·중 양국 간에 가장 손쉽게 진행할 수 있는 협력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한·중 간 해양경계획정을 조기에 확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중국은 계속 우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갈 겁니다. 얼마나 불합리합니까. 차라리 해양경계를 확정하고 우리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1년간 얼마를 잡도록 허가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면 당연히 우리도 중국에 요구할 수 있는 겁니다. 기브 엔 테이크죠.”
양 소장은 “한·중간에는 항공식별구역(ADIZ·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과 해양경제, 영토주권, 자원개발, 군사안보 등 갈등요소도 있지만 기후변화, 해양질병, 국제범죄, 해상교통안전, 해양재난, 방사는 대응 등 협력요소들도 많다”며 “협력하지 않으면 서로 손해를 보는 것이 해양인 만큼 지금은 협력 방안을 찾아서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갈등 구조를 협력 모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사안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된다”고 말하고 “구체적으로는 협력의 키워드를 더 이상 국가단위에서 찾지 말고 환경오염 예방과 광역생태계사업 등 철저히 황해를 터전으로 하는 지역민들의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소장은 인터뷰 말미에 우리 정부와 국민들에게 건의할 것이 있다고 했다.
“황해와 동중국해는 반폐쇄해로써 서로 이용하고 관리할 책임이 있는 공유의 바다입니다. 내 것을 어떻게 나눠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양국의 이익이 중첩된 수역을 어떻게 공존하며 관리하고 지켜갈 것인가의 시각에서 과제를 풀어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때로는 이미 공개된 자료에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공통의 기준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큰 낭비인지 모릅니다. 낭비를 줄이려면 서로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과감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오픈하면 중국 쪽에서도 오픈할 여지가 많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의심을 없애고 신뢰를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그것입니다. 우리 국민들도 정부를 믿고 중국과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할 수 있도록 협상 재량권을 충분히 주어야 합니다. 외교부나 해수부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게 어떤 결과를 도출했을 때 과연 국민들이 어떻게 평가를 할까 하는 것이거든요. 이분들은 국익의 최전방에 있으면서 누구 보다 심사숙고하고 신중하게 문제해결 방법을 찾아 가는 실무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