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명예회장의 혐의가 불거진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정점에 바로 IMF 외환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재계는 10년에 걸쳐 같은 사안을 놓고 세 번째 검찰 수사 및 재판을 받고 있는 효성그룹 사태의 본질은 20년 전 정부 주도로 진행된 대기업 구조조정이 과연 옳은 것이었느냐를 판가름 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당시 정부의 압박 아래에서는 효성그룹의 대처가 최선의 방안이었다는 것이 재계의 주장이다.
◆정부 “빅딜·통합하되, 고용축소·공적자금 투입 안돼”
유한수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전 포스코건설 상임고문)는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이 워낙 강경해 당초 약속에서 한 치도 후퇴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조건을 바꾸려고 하면 재벌들이 꾀를 부린다며 펄쩍 뛰었다”면서 “마치 화투판에서 한번 내밀었던 화투는 거두어들일 수 없는 낙장불입(落張不入)의 원칙같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현실 속에서 정상적으로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업은 사실상 전무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국내 최대 기업이었던 삼성전자조차 이를 맞추기 어려워 회사 재무 담당자들이 금융기관 담당자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을 정도였다. 반도체 빅딜에 주저한 LG그룹도 그룹 돈줄을 죄려는 압박에 LG반도체를 내놓아야 했다.
더 큰 문제는 구조조정 성과에만 열을 올린 정부가 정책의 원칙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무리하게 일을 다그쳤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이 계열사에 지원을 하면 부당 내부거래의 소지가 있다며 조사를 받는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빅딜 대상 업종이나 계열사 통합 대상 기업의 경우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모기업이 자금지원을 할 때는 예외로 인정했다. 또한 구조조정 결정 이후 들어갈 막대한 비용도 사실상 기업에 떠넘겼다.
이러한 어긋난 정부 원칙에 희생된 기업들 가운데 하나가 효성그룹이었다.
◆“DJ정부 인정한 부실청산, 차기 정부 땐 범죄로 낙인”
효성그룹의 경우 1998년 초 모기업인 효성물산의 부도설이 나돌았고, 이 회사에 보증을 서 주었던 계열사조차 연쇄부도 위기에 몰렸다. 종합무역상사인 효성물산은 정부 정책에 의거해 무리한 출혈수출을 추진하다가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환율 급등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부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위기를 자초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효성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효성물산 파산 △공적자금 수혈 △벌어서 갚는 것 등 세 가지뿐이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파산이었고, 공적자금 수혈도 다른 기업들이 많이 선택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두 가지 방안은 정부가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는 고용유지 문제 때문에, 후자는 국민세금으로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반대했다. 따라서 정부는 원칙을 깨고 효성을 비롯한 기업들에게 ‘계열사 부실을 스스로 처리하고 법정관리는 맡기지 말라’로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7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조 명예회장 등에 관한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진영욱 전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기업들이 부채비율을 맞추는 일은 불가능했다”면서도 “정부도 이를 알면서 요구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결국 1998년 7월 조 회장은 그룹 내 1~4위를 차지하고 있던 효성물산과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T&C를 통합해 ㈜효성을 출범시키고 효성물산의 부실을 떠안았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주거래은행인 한일은행장이 조회장을 불러 만약 효성물산을 파산시키면 ‘모든 계열사 대출금을 회수하겠다’고 협박했고, 조 회장은 ‘모든 걸 바쳐서라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채권은행에 피해가 안 가도록 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또한 조 회장은 이 자리에서 ‘합병 후 경영이 제대로 안 되면 모든 것을 포기 하겠다’는 각서를 직접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후 효성그룹은 효성물산에서 발생했던 부실을 청산하기 위해 (주)효성의 영업이익 일부와 계열사 및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얻은 자금을 동원했다. DJ 정부 당시 공정위도 이를 인정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면서 사정당국은 효성그룹의 효성물산 부실 청산 과정이 불법이라면서 조 명예회장을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에까지 서게 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오늘 생존 여부도 알 수 없는 긴급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당시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많지 않았다”면서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기업과 기업인들의 행동이 잘못되어 보일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