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진칼럼] 비타민C는 하루에 몇알?

2017-11-1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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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진칼럼]
 

      [사진=허남진 논설고문]



비타민C는 하루에 몇알?

당신은 물론 소변 볼 때 손을 씻겠죠. 그런데 볼일 보기 전에 씻나요, 후에 씻나요? 얼마 전 한 지인이 농담조로 물어왔다. 글쎄~. 전에도 씻고, 후에도 씻어야 되나? 헷갈렸다.
살다 보면 헷갈리는 게 정말 많다. 당신은 비타민C를 하루 몇 알 드시나요? 몇 년 전 한 의대 교수가 TV 강연을 한 직후 비타민C 열풍이 불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며 매끼 두 알씩 먹을 것을 권장했다. 그걸 금과옥조로 지키는 지인들이 주변에 지금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의사들 중에도 하루 한 알이 적당하다느니, 과일과 야채를 많이 섭취하면 약을 안 먹어도 충분하다느니 의견이 분분하다.
쇠고기 마블링도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마블링은 기름이요 불포화지방이기 때문에 몸에 하등 이로울 게 없다는 게 정설처럼 자리잡았다. 그러나 얼마전 해외 유명 연구소 연구결과라며 동물성 기름이 결코 해롭지 않다는 내용이 방영돼 화제를 불렀다. 국내 한 세미나에선 쇠고기 마블링은 나쁜 콜레스테롤을 없애주는 좋은 음식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무엇이 정설이고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이처럼 헷갈리는 상황이 국가정책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보수-진보의 이념적 대결이 빚어내는 대부분의 정책에서 그런 현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성장 vs 복지, 개발 vs 환경 논란이 대표적이다.
논란을 부른 사안들이 국가정책으로 구현될 때는 진영을 떠나 당위성과 부작용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역대 정권들은 엄청나게 큰 사안들을 너무 쉽게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4대강 사업을 뚝딱 해치운 이명박 정권이 그렇고, 애써 건설한 보(洑)부터 때려부수는 현 정권 또한 다르지 않다. 그 피해자가 누군가. 국민이요, 후손들이다. 100년, 1000년을 가꿔가야 할 국토가 5년마다 세우고 부수고를 반복하며 멍드니 이래서야 어찌 후손들을 볼 면목이 있겠는가.
작금에 진행되고 있는 탈원전(脫原電) 정책도 바로 그런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탈원전을 공약하고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한 달 만인 지난 6월 고리1호기 영구폐쇄 기념식에서 탈원전을 전격 선언했다. 이때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검토 의견도 제시했는데, 한달 뒤 실제로 건설 중단이 결정됐다. 3개월에 걸친 공사 재개 여부 공론화 과정을 거쳐 건설 재개로 결론이 났지만, 정부는 △계획된 신규원전 건설계획 백지화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등의 다소 과격한 로드맵을 내놨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를 전체 전력의 20%까지 높여 나가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식 속도전이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은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다. 시커먼 매연을 뿜어내는 미세먼지의 주범 석탄발전과 재앙이 염려되는 원전, 이 두 ‘적폐’를 대체하는 안전하고도 친환경적 발전설비다. 이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성공적 실행 여부엔 숱한 의문이 제기되는 중이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이 ‘적폐’ 에너지를 100% 대체할 수 있다면 오죽 좋겠냐만은 우리나라의 지형과 기후 등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이야기란다. 정부가 그 비중을 20%까지만 늘리겠다고 한 것은 그런 여건을 계산한 결과겠지만, 전문가들은 그마저도 설치·유지 비용과 용지난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도 걸림돌이다.
독일과 스위스가 원전 폐기 수순에 들어갔고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원전 의존도를 줄여나간다는 방침이다. 대신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글로벌 추세다.
그런데 그와 정반대 행보가 있어 눈길을 끈다. 세계적 IT거부 빌 게이츠다. 그는 은퇴 2년 전인 2006년 원자력 기술 개발 회사를 설립한 데 이어, 지난 3월엔 중국 국영 원자력기업인 중국핵공업집단공사(CNNC)와 합자회사를 만들었다. 현재 진행 중인 신기술 원자로 개발이 마무리되면 중국에 실험용 발전소를 짓고, 2030년부터 가격과 안전성, 폐기물 처리 등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신개념 원전을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또 원전 증설을 결정했다.
어떤 것이 옳은 방향인가. 비전문가로선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짚고 싶은 것은 정책의 다양성이다. 누차 강조하지만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정책이란 있을 수 없다. 빛(陽)이 있으면 그늘(陰)이 있고, 이득 보는 사람이 있으면 한구석에선 손해로 우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 사는 이치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에너지정책도 마찬가지다. 값이 싸면 공해가 뒤따르고, 매연이 제로면 재앙적 위험이 걱정되고, 공해 없고 안전하면 값이 비싸거나 총량이 부족하다. 값싼 무공해 안전 에너지는 먼 나라 신화일 뿐이다.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에너지 정책은 현재로선 없다.
그렇다면 장기적 목표는 탈원전에 두더라도, 그때까지는 원전을 기반으로 신재생에너지 역량을 키워가는 균형적·단계적 접근법이 불가피하다. 뾰족한 대책이나 수단도 없으면서 원전이 마치 만악의 근원이라도 되는 듯 마녀사냥 식으로 몰아붙이는 바람에 그동안 효자였던 원전이 적폐 청산 1호로 둔갑했다. 앞으로도 한동안 사용할 수밖에 없는 원전이 이젠 불신의 대상이 됐다. 그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미 예일대 심리학교수 풀 블룸은 ‘공감에 반대한다’라는 책에서 “잘못된 편견에 공감할 경우 악행을 유발하고 폭력 충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 결정의 많은 경우 잘못된 편견에 공감하여 덜컥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진영논리에 빠지거나 광장의 촛불 구호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호흡을 가다듬고 되돌아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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