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로 그 정치인이 티비에 나와서 하는 말에 정말 ‘싸기지가 없는지’ 관심 깊게 들으면서 “저 사람도 차츰 말솜씨가 많이 싸가지가 있어지는구나, 보기 좋네”라는 생각과 함께 그 정치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언어를 구사함에 있어 상대가 듣기 좋게하고 내가 한말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개인의 기술이고 강점이며 선양할 일이다. 대부분 정치인들이 그러한 기술이 뛰어난 것 같다.
때로는 ‘싸가지 없는 말’과 ‘싸가지 있는 말’을 상황에 맞게 잘도 가려 쓴다. 그런가 하면 말 한마디로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재주는 코미디언이 최고다. 옳은 말을 ‘싸가지 있게’ 하면 그 같이 좋을 수는 없겠지!
나의 말을 그와 같은 말로 애써 무시하며 안 들으려한 상대가 미워서도 더욱더!. 그런데 그 뒤에 오는 것은 씁쓸함과 패배감이 없었다고 전혀 말하기도 힘들다.
내용보다 형식에 대한 비판이 더 심한 것은 결국 감정이 이성을 눌렀다는 뜻이라고들 한다. 상대의 말이 아무리 옳아도 말하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고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게 싸가지 없다고 말을 하고 그 말에 동조하는 많은 사람들은 분명 나 보다 권력자였고 그러기에 그런말이 가능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면서도 나의 ‘싸가지 없음’에 불쾌하고, 상처받고, 때려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했을지 상상이 간다. 그리고 그 말에 나도 이를 갈았을 것이다. .
언어의 표현형식이 긍정적인 사람, 부정적인 사람, 그런데 나는 부정적 언어를 자주 사용한 것 같다.
우선은 듣는 이를 시원하게도 하지만 항상 무언가 깨름직함을 남기는 언어 표현, .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표현이 안 좋다면 상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속담이 있지 않는가? “같은 이슬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 남보다 조금 더 안다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독설을 퍼부은 나를 반성해 본다. .
‘싸가지 있는 말’로 내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여 상대를 이해시킬 수 있는 좀 교양스런 말과 상대의 말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경청, 즉 이청득심(以聽得心)하는 마음으로 조끔 늦었지만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