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침묵' 정지우 감독, 본질을 꿰뚫다

2017-11-0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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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침묵'의 정지우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언제나 정지우(49) 감독은 어떤 본질을 꿰뚫어왔다. 한 남자의 애정과 집착, 살의의 하모니를 담은 ‘해피엔드’(1999)를 시작으로 젊음과 관능의 이야기를 다룬 ‘은교’(2012), 1등만 축하받는 세상의 잔혹함을 표현한 ‘4등’(2016)에 이르기까지. 매 작품 정 감독은 예리하고 섬세하게 사건과 진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관찰해왔다.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침묵’(감독 정지우) 또한 마찬가지다. 중국영화 ‘침묵의 목격자’를 원작으로 하지만 완벽히 다른 시선과 초점으로 사건의 본질을 바라본다.

같은 맥락에서 모든 걸 다 가진 남자 임태산(최민식 분)의 흥망성쇠를 담은 ‘침묵’은 정 감독의 매력을 원 없이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특유의 예리하고 세밀한 시선으로 원작과 궤를 달리하고 인물의 내면에 집중해 치밀하고 끈질긴 이야기 전개 방식을 펼치는 것은 정 감독의 장기이자 자랑이니까.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정지우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침묵'의 정지우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원작 영화의 어떤 점에 끌렸나? 리메이크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하다
- 제작사 용필름 대표가 이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어보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보통 우리는 SNS에 나오는 자투리 영상, 녹음된 한 부분을 가지고 어떤 사람이나 상황 전체를 판단하지 않나. 그게 결정적인 단서라고 생각하니까. 그건 모두에게 두려움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훔쳐보는 기분을 공유하기도 한다. 평소 이러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런 이야기가) 원작에도 포함돼있어서 재밌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 단편영화로 만들었던 소재기도 하고 최(민식) 선배님이 합류하시며 구체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원작을 정지우 화(化) 시키는 작업은 어땠나?
- 안 믿으실 수도 있는데 ‘침묵의 목격자’를 딱 두 번 봤다. 시작하기 전에 한 번 보고, 최민식 선배님이 합류할 때 한 번 더 봤다.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원작은 남자 주인공과 변호인, 검사의 이야기가 메인이다. 세 사람의 관점으로 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아주 입체적이거나 다면적 관점을 통해 드러내지 않는다. 더 단순한 편이다. 나머지 인물들도 성격이 없어서 허하다고 생각했다. 시점을 달리할 땐 실체적 진실의 다면성을 담아야 하지 않나. 다시 써볼 때 적합한 구조가 현재라고 본 거다. 임태산의 내면이 어떻게 흘러가느냐 생각하다 보니 등장인물이 많아지고 캐릭터를 가지게 됐다. 딸과 약혼녀 그리고 원작에 없는 김동명이 태어났다.

영화 ‘라쇼몽’처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본 하나의 사건을 표현할 수도 있었는데. 정 감독은 다른 선택을 했다
- 사건 자체를 받아들이면 모르겠는데 원작 속 사건이 너무 단순했다. ‘라쇼몽’의 경우는 각자의 입장으로 실체가 상이하게 달라지는 건데 이 사건은 각자의 입장을 드러낼 만하다고 보지 않은 거다. 임태산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했다. 이건 임태산이 최민식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최민식 선배가 아니었다면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졌을 것 같다.

정지우 감독이 생각하는 ‘임태산 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 근본적으로 오만하고 패배한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내면은 도덕적인 사람이다. 사건이 터졌을 때 ‘내가 딸과 돌보지 않은 가족 때문에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 내 잘못이구나’하고 깨달을 정도다. 내내 임태산이 돈을 강조하는데 이 사람 입장에서는 ‘간 보지 말고 빨리 얘기하자’는 의미였다. 임태산은 자수성가한 재벌이라는 범주로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그 ‘자수성가’한 인물의 성격이 그의 많은 부분 특히 성격적인 면들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침묵'의 정지우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극 중 인물 간의 관계가 흥미로웠다. 많은 부분 생략한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 주변 인물들이 너무 볼륨감이 있으면 반대로 임태산이 약해진다. 긴 시간 동안 말 안 하고 숨기고 어떤 생각인지 인색한 상황에 다른 관계나 캐릭터들이 강해져 버리면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조절을 잘해야했고 일정 부분에 관해 압축해야 했다. 다른 방향으로 물길이 나면 이야기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있는 구조였다.

특히 희정(박신혜 분)에 관한 것들이 많이 삭제됐다. 동성식(박해준 분) 검사와의 관계라거나
- 두 사람에게 키워드로 연애 전사를 줬었다. 희정과 성식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미처 우리도 몰랐던 이야기들이 발견되며 ‘아, 두 사람이 함께 살았었구나’하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이 재밌었던 거다. 잠깐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도 하는데 실제로 강아지와 함께하는 장면도 찍었었다. 이야기를 줄이다 보니 삭제됐지만…. 블루레이가 나온다면 꼭 강아지 신을 넣고 싶다.

임태산과 유나(이하늬 분)의 멜로도 화제였다
- 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 불편하게 여기셨나?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점차 누그러지더라
- 다행이다. 확률적으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성 관객의 일부가 최민식, 이하늬가 한꺼번에 나오고 뽀뽀까지 한다고 하면 불편함을 느끼시기도 했다. 어쨌거나 마지막에 다다른 감정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특히 보트 신 같은 경우는 믿을 만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도로 낱낱 했었다.

유나 역에 고민이 많았다고
- 신인과 함께 작업하는 걸 기꺼이 즐거워하는데 유나 역은 신인을 줄 수가 없겠더라. 구조적으로 안타까운 부분인데 나이가 있는 신인 여배우는 구하기 어렵다. 슬픈 현실인 거다. 남자 배우들은 30대가 넘어도 반짝거리는 신인을 발견할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여배우들은 불리하다. 재능이 없거나 힘든 현실에 포기했거나. 둘 중의 하나인 경우가 있어서. 그래서 유나 역을 두고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하늬의 경우 정식 제안도 아니었고 신도 적었기 때문에 망설여졌다. 생각이 있다는 의사를 전달받고 유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분량은 적으나 중요한 역’이라고 설명했는데, 이하늬는 분량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더라. 내게 딱 이렇게만 물었다. ‘두 사람이 진짜로 사랑하는 사이인가요?’

영화 '침묵' 스틸컷 중, 유나(이하늬 분), 임태산(최민식 분)[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동명(류준열 분)이나 미라의 주장에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감정에 공감이 들었다
- 관계를 노골적으로 보는 건 아닌데 어떻게 한눈에 읽힐 것인가에 대한 기대는 있었다. 영화 시작 전 어떤 선입견이나 선입관이 중요한데 그렇게 시작하다 보니 영화의 이야기로 조절할 수 있었다. 김동명이 한 이야기 중 절반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다. 영화를 자세히 보시면 동명의 톤이 마구 달라진다.

두 사람의 관계를 확신한 대목이 있었다. 임태산이 김동명에게 속옷을 주지 않았을 때다. 목적이 분명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서슴지 않는 남자가 죽은 연인의 명예를 지켜준 것 아닌가.
- 하하하. 인터뷰하면서 많은 부분을 상기하고 깨닫는데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다. 자극적으로 눈을 끄는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를 흘린 거다. 기술적인 것이다. 김동명이 임태산에 의해 쉽게 조절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거다. 이런 요소가 원작에는 적어서 아쉬웠고 우리 영화에서 조절하고자 했다.

영화에 여러 가지 변수가 일어났던 것 같다. 그 변수로 인해 오히려 득을 본 경우도 있나?
- 많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난데없이 그러는 게 아니라 한 인물을 두고 끊임없이 이야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나와 임태산이 보트에서 컵라면을 먹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본래 시나리오에는 ‘내가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 잘 할게’하고 기분 좋게 떠나는 거였다. 그런데 이하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둘의 관계 1년 전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유나는 미라가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미라랑 잘 지내면, 오빠는 좋지?’라고 묻는 대사가 그래서 생겨났다. 최민식 선배에게 이 대사를 미리 언질하지 않고 대신에 ‘애드리브 식으로 대사가 하나 나갈 건데 임태산의 입장에서 받아달라’고 부탁했었다. 흥미로운 기대를 하고 찍었는데 최민식 선배님이 ‘부담스럽지’하고 받더라. 배우들이 캐릭터에 녹아 들어가서 조금씩 자기 캐릭터를 밀고 나가고 또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정말 감동적이었다. 감독으로서 그런 장면이 참 좋고 기억에 많이 남더라.

영화 '침묵'의 정지우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태국 촬영은 어땠나?
- 태국 촬영은 어려웠다. 계획대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즉흥성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강에서 찍는데 그곳이 바다와 가까워서 물이 들어왔다가 나가기도 하고….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이수경과 닮은 배우를 섭외하는 과정은?
- 아! 그건 닮은 배우가 아니라 이수경이다. 하하하. 현장에서 코를 덧대고 눈매를 다르게 그렸었다. 반응이 딱 반반으로 갈리더라. 특히 이수경이 미라와 다른 몸짓으로 연기를 해줘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표현됐다.

누군가에게 영화를 딱 10분만 보여준다면 어떤 장면을 보여주고 싶나?
- 고민된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 분위기를 전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지금 딱 떠오르는 장면은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법정에 들어선 임태산의 모습이다.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남자가 죄수복을 입고 피고인석에 앉게 된 장면을 이어두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 정도(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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