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새달 1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한다.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예산안(2018년도)의 국회통과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은 지난 6월12일 11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추경) 이후 143일 만에 두 번째 시정연설에 나서게 됐다.
문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는 일자리 창출 및 개혁입법 추진, 대북정책 등 동북아외교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정부 예산안에는 대선 공약인 공무원 증원 및 아동수당 도입, 3조원 규모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 지원 방안 등이 담겼다. 청와대 관계자는 30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된 주제는 민생과 경제 일자리 창출”이라며 “주요 사회현안의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朴, 지난해 연설 때 개헌 카드···‘역풍’
국회 시정연설에는 대통령과 여야, 특히 정부·여당과 제1야당 간의 ‘힘의 균형’ 함수가 작동한다. 정국 주도권이 어느 정도 균형점을 이뤄야만 ‘주고받기’를 통한 정국 묘수를 짜낼 수 있다는 얘기다.
시정연설의 법적 근거는 국회법 제84조(예산안·결산의 회부 및 심사)다. 정부가 국회 본회의에 출석, 새 예산안 편성 등에 관한 내용을 보고토록 한 절차다. 87년 민주화 이후 취임한 대통령은 취임 첫해를 제외하고 이듬해부터는 국무총리 대독으로 갈음했다. 대통령이 매년 국회 시정연설을 한 것은 전임 정부 때가 처음이다.
변수는 당·청과 범야권 간 ‘힘의 불균형’이다.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국민적 지지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범야권의 존재감은 정반대다. 취임 초반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밖에 없는 당·청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범야권은 ‘마주 달리는 폭주기관차’처럼 치킨게임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박 전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민심의 역린을 건드렸던 이유도 ‘힘의 불균형’과 무관치 않다. 이명박(MB) 전 대통령과는 달리, 매년 예산 국회 때마다 국회를 찾은 박 전 대통령의 행보 자체는 소통 여부와 관계없이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임기 막판 국정농단 게이트에 휩싸인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정부의 금기어로 취급받았던 ‘개헌 카드’를 꺼냈다.
◆일자리창출·개혁입법·대북정책 초점···野 현미경 심사 예고
박 전 대통령의 ‘개헌 카드’는 오래가지 않았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잇따라 터지면서 ‘촛불정국→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결국 지난 5·9 대선에서 민주정권 3기인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시정연설의 역설은 현 정부에도 고민거리다. 자유한국당이 이날 국회 복귀를 선언했지만, 보이콧의 단초로 작용한 방송장악 프레임은 여권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당·청으로서도 ‘공영방송 비정상화의 정상화’는 타협할 수 있는 의제가 아니다.
쟁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번 주 개시하는 입법·예산 전쟁의 최대 이슈인 공공부문 증원을 비롯해 △사회간접자본투자(SOC) 삭감 △최저임금 인상 △세법개정안 △규제프리존법 등 규제 완화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 등을 놓고 강대강(强對强) 대치가 불가피하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역대 대통령 시정연설은 정국 협력보다는 역설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효과적인 시정연설을 위해선 제1야당과의 긴밀한 물밑 접촉을 통한 공통점 찾기 등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는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 직후인 새달 2일부터 한 달간 예산 전쟁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국회선진화법의 자동부의 제도로 최근 3년간 이어온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12월2일) 내 통과에 힘이 실리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