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11월 2일 개봉할 영화 ‘부라더’(감독 장유정)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로를 휩쓸었던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를 원작으로 약 7년 여 만에 영화화가 된 이 작품은 한국적 배경·감성에 판타지적 요소를 버무려 원작과는 신선하면서도 유쾌한 매력을 완성했다. 이는 장유정 감독의 완벽한 이해와 해석 그리고 변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새로운 결을 만들어낸 장유정 감독은 뮤지컬의 영화화라는 그 어려운 걸, 또 한 번 해내고 말았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장유정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 전작 ‘김종욱 찾기’의 경우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장르적 법칙이 두드러지지 않나. 뮤지컬에서 영화로 옮길 때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부라더’는 코미디다. 코미디라는 건 언제, 어느 때, 누구와 함께 보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진다. 대중성의 확보라고 할까?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재밌게 보여야하기 때문에 작업이 오래 걸렸다.
- 모두가 걱정하셨다. 하하하. 재밌는 건 ‘형제는 용감했다’를 쓸 때도 ‘너무 영화적이지 않으냐’는 우려가 있었다는 거다. 안동이 배경인 데다가 한복을 입었으면서도 궁중 이야기를 하지 않는 뮤지컬이라니. 다들 처음 보는 장르라며 꺼렸다. 그런데 초연이 대박을 쳤고 자연스럽게 영화화까지 이어졌다. 막상 시나리오 각색을 하면서 보니까 구성이 연극적이어서 문제였지만.
연극적인 특성들을 영화적으로 바꾸는 작업은 어땠나?
- 달라진 지점이 너무도 많다. 오로라(이하늬 분)의 등장부터 다르다. 뮤지컬 속 오로라는 제 발로 무대에 걸어와 연극적 컨벤션(convention, 관습)으로 액션 자체가 아주 과장돼있다. 늘씬하고 키가 큰 여배우가 하이힐에 양산을 쓰고 한옥 무대를 누비면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극 중 주봉과 석봉 역시 오로라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다. 반한다는 건 일종의 사건이다. 인생의 균형을 깨트리는 중대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영화로 표현한다면 판타지가 될 텐데. 그 방식을 그대로 반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살면서 균형을 깨트리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교통사고를 통해 등장시켰다. 주봉과 석봉이 오로라에게 반한다는 설정도 뺐다. 오로라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앞서 깔아놓은 매혹적 분위기가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어서였다. 뮤지컬은 허용되는 요소들이 있고 오로라가 1인 2역이 가능했는데 영화는 아니었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추가되고 빠졌다.
뮤지컬의 경우 넘버(뮤지컬 곡)가 큰 역할을 하는데 이 요소가 빠진다는 것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 뮤지컬의 경우는 음악이 주된 역할을 한다. 서사를 끌고 가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거다. 반대로 영화는 이미지가 주종을 이룬다. 말씀하신 대로 음악을 빼면서 사람들에게 뭉클하고 코믹한 것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느냐가 큰 고민이었다. 음악은 압축이다. 폭발력 있게 보여주면서 감동과 정서적 움직임을 만든다. 일례로 순례의 노래 중 ‘우리 마을 언제 또 오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 안에 정서가 다 담긴다. 이 정서를 영화에 담되 설명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압축을 풀어버리면 힘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니까. 춘배와 순례의 모습을 굵고 짧게 치고 나간 거다.
그래서 그런지 삭제된 장면도 많았다. 석봉과 주봉 서사 등이 대사로서 표현되기도 했는데
- 주봉과 석봉은 왜 사이가 나쁠까? 저도 이에 대해 많이 고민해봤다. 어릴 때 좋아하는 사람을 뺏겼다거나 뭐 이런저런 버전을 다 만들었었는데 설명하면 할수록 이야기가 비극적으로 빠지더라. 올드하기도 하고. 고민 끝에 남자 형제가 있는 친구들을 인터뷰했었는데 다들 ‘왜 사이가 나쁜지 모르겠다’면서 기억을 못 했다. 작은 거로 싸웠고 감정이 쌓이다가 폭발했다고 하더라. 뮤지컬에서는 두 사람이 틀어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석봉의 파혼이었는데 영화에는 쓸 수 없었다. 뮤지컬을 쓰던 당시에는 동성동본으로 파혼한다는 게 가능하기도 했고 코미디로 작용할 수 있었는데 2017년에는 그게 불가능하지 않냐. 코미디도 뭐도 아니다. 두 사람이 사이가 나쁜 건 그냥 안 맞아서다. 한 형제지만 안 맞는 거다.
공연은 배우들이 애드리브를 즐길 수 있지 않나. 영화는 어땠나? 배우들의 애드리브가 가능했나?
- 애드리브도 있었지만 사실 90% 대본대로 갔다. 보이는 몇 가지 대사들이 애드리브였지 원하는 바는 정확하게 주고 빠졌다. 우리 영화가 흐름이 빠르다 보니 그 장면 안에 기승전결이 있어서 길게 가는 건 원치 않았다. 두 배우 모두 유쾌하고 장난기가 많지만, 캐릭터를 접근하는 방식이나 작업하는 태도는 매우 진지했다. 작품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배우들이었다.
뮤지컬을 만든 게 벌써 7년 전이다. 그간 감독의 생각이나 환경이 많이 바뀌었을 거고 또 그런 점들이 시나리오에도 반영이 되었을 것 같은데
- 감정적인 것들이 바뀌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것이었다. 자식의 입장에서 ‘아버지는 엄마를 못살게 굴고 괴롭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부부 사이는 부부만 안다. 자식들도 잘 모른다. 저 역시도 작품을 쓰던 당시에는 넘겨짚었던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루뭉술하게 쓰기도 했는데 영화를 쓸 땐 ‘내가 엄마, 아빠를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한 면밖에 알지 못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지나친 자만이 부른 착각이었구나 하는 거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춘배와 순례의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젊은 시절의 춘배와 순례 모습이 확 박히더라
- 저도 좋아하는 장면이다. 엄마, 아빠도 좋은 시기가 있는 거니까. 나도 몰랐던 부모님의 모습이 담겨있는 장면 같다
차기작은 어떻게 계획 중인가? 뮤지컬을 영화화하는 작업을 줄곧 하셨으니 차기작도 감독님의 작품 중에서 만들어질까?
- 그렇지는 않다. 제가 영화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쓴다는 건 부담이 따르지 않겠나. 제작하는 분들 역시 확신이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니까. 자연스럽게 흘러간 거지 의도를 가지고 있던 건 아니었다. 대신 ‘부라더’를 만들 때, 따듯한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볼 수 있는 그런 영화. 뮤지컬을 만들었을 때도 의외로 중장년층이 극장을 많이 찾아주셨고 공연을 보며 좋아해 주셨다. 이들이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만약 제가 영화를 만든다면 이런 따듯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만약 다음 영화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이런 따듯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약간의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