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칼럼] '시진핑 1인 체재구축의 신호'라는 것들의 오류

2017-10-2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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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병서 초빙논설위원·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시주석의 1인독재 체제구축의 신호'라고 하는 것-맞는 말인가.

인사가 만사다. 맞는 말이다. '코드인사' 어쩌고 하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연애다.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다. 한국도 지난 정권 때는 모조리 반대하다 야당이 여당 되고 여당이 야당되니 하는 것이 똑같다. 서로 반대하기 위해 태어난 '당'처럼.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개최 중에 서방의 언론, 특히 한국의 언론에서는 시진핑의 독재권력 구축에 관한 기사가 넘친다. 신뢰성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서방에 서버를 둔 **”에 따르면이다. 중국에 관한 서방의 예측은 맞은 적이 거의 없다. 특히 ‘카더라 통신’은 흥미와 자기 입장 위주로 마구 질러 놓고 안 맞으면 그만이다. 한국의 언론에서는 이를 그대로 인용하고 사후검증을 안 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독재권력 구축에 관한 많은 한국의 설(說)들은 중국의 시스템과 제도 그리고 그 배경과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어 나오는 것들이 대부분으로 보인다. 중국의 집단지도체제, 핵심론은 모두 역사적 배경이 있어 탄생한 제도다.

시 주석의 1인 독재 체제 구축의 징후라고 하는 것 중 대표적인 4가지 △​핵심(核心)이라는 칭호-'시핵심' △​재경영도소조의 조장-시진핑(리커창(李克强)에게서 탈취) △'당장(黨章)'에 지도자 사상 삽입-'시진핑 사상' △'당주석'-총서기가 아닌 '당주석'으로 명칭 변경 등을 짚어본다.

◆'시핵심(習核心)론'-독재권력의 상징 아니다

2016년 1월 시 주석의 호칭에 '시핵심'이란 말을 쓰면서 '시진핑의 독재체제 구축 시도'라는 설이 처음 나왔다. 정말 시핵심은 독재 권력의 상징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는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이 배경이다.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와 상무위원의 정년제 ‘7상8하(七上八下)’의 조건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이래로 국가급 지도자들은 정년이 없었다. 그래서 종신이다. 그런데 종신제도의 심각한 부작용이 마오쩌둥 시절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다. 2000만명 이상을 굶겨 죽이고 중국을 10년간 암흑천지로 만든 것이 바로 모택동의 종신 독재의 부작용이었다.

그 반작용으로 생긴 것이 집단지도체제다.

덩샤오핑 시절에 만들어진 집단지도체제다. 하지만 당시에 덩샤오핑 1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형식상으로 집단지도체제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제도가 만들어지자 중국의 창업공신 8대 혁명원로 때문에 덩샤오핑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것은 종신제인 국가급 지도자의 임기와 상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덩샤오핑 시절 등장한 것이 ‘집단지도체제 지도자임기(7상8하)’와 ‘핵심론’이다.

덩샤오핑 시절에는 국가건설에 혁혁한 공을 세운 중국의 8대 혁명원로 소위 ‘팔로치국(八老治國)’의 시대가 지속됐다. 그러자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덩샤오핑은 1987년에 천윈(陳雲)과 리셴녠(李先念) 등의 간부 종신제의 철폐를 도입해 ‘7상8하‘의 원칙, 즉 67세는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하거나 연임할 수 있지만 만68세는 퇴임해야 한다는 제도를 만들었다. 결국 덩샤오핑의 '개혁파'와 천윈의 '보수파'와의 권력투쟁에서 덩샤오핑이 승리한 것이다.

중국의 ‘핵심론’은 천안문사건(6.4사건)이 배경이다.

중국의 지도자와 관련된 이론 중의 하나가 ‘핵심론’인데 이는 바로 당에는 오직 하나의 핵심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의 핵심론은 천안문사태(6.4사건)가 배경이다.

1989년 6월 16일, 천안문사태(6.4 사건) 발생 후 덩샤오핑은 지도자회의에서 ‘핵심론’을 언급했다. 핵심론은 당의 중심에 반드시 핵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지도자회의에서 덩샤오핑이 ‘핵심’을 언급하면서 제1대는 마오쩌둥, 제2대는 덩샤오핑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제3대는 장쩌민(江澤民)이다. 즉 ‘총서기=핵심’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 들어서 장쩌민 주석이 권력을 완전히 이양하지 않고 계속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호칭도 ‘핵심’이 아닌 ‘총서기’로만 언급하고, 핵심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하지 않았다.

핵심이라는 말 대신 ‘영도자(領導人)’를 사용하게 했다. 핵심과 영도자의 언어 의미의 차이는 영도자는 ‘집단지도체제의 리더’이고, 핵심은 ‘최고권력자’라는 것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후진타오 시절 장쩌민이 만들어 놓은 권력구조 아래에서 힘이 약했던 후진타오 주석은 핵심이 아닌 영도자로서의 호칭에 만족해야 했다.

후진타오 주석의 뒤를 이은 시진핑은 자연스럽게 호칭이 제5대 영도자로 불렸지만, 2012년 이후 4년간의 부정부패 타파를 계기로 권력을 장악했다. 그래서 2016년 핵심이라는 용어를 장쩌민, 덩샤오핑 시절의 권위로 회귀 시킨 것이다.

태자당 출신으로 상하이방의 후광을 입고 권력의 반열에 오른 시진핑이 이렇게 단시간에 강력하게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은 10년간 장쩌민의 손아귀에 휘둘린 후진타오 주석이 모든 권력을 시진핑에게 한꺼번에 물려주고, 장쩌민파의 제거를 요구했고 이를 시진핑이 수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시핵심’은 새로운 권력창출이나 독재권력의 상징보다는 후진타오 시절 정치적 이유로 약화된 주석의 위상을 정상화시킨 정도이다. 후진타오 시절 ‘9마리 용이 다스리던 나라’를 시진핑 시대에 ‘한 개의 달에 주변에 6개의 별’이 위치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재경영도소조 조장 탈취-‘리커창 총리 바지총리 만들기?’

세가 약한 무리들은 기득권 세력 군기잡기 하려면 새로운 방법을 쓴다. 장쩌민의 권력에 대항하기 힘들었던 후진타오 시절, 9명의 상무위원 중 7명이 상하이방이거나 상하이방의 후광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후진타오는 역대 어떤 주석보다 당과 국가의 통치가 힘들었다.

그래서 9명의 상무위원을 포함한 국가급 지도자인 25명의 정치국원의 군기잡기로 시작한 것이 ‘집체학습(集體學習)’이었다. 한 달 반 간격으로 모든 지도자들을 집합시키고 주제 강연을 통해 후진타오의 의도를 내비친 것이다.

상하이방의 후광을 입고 공청단의 견제를 받으며 권좌에 오른 시진핑도 후진타오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집체학습은 이미 후진타오가 써 먹은 방법이기 때문에 시진핑은 다른 방법을 썼다. 소위 ‘소조정치(小組政治)’, 우리로 치면 위원회 정치를 시작했다.

시진핑은 국가안전위원회를 시작으로 국가심화개혁위원회, 군대개혁위원회, 인터넷위원회 등의 새로운 위원회를 만들 때마다 그 조장을 자기가 꿰어 차고 그 아래에 총리를 비롯한 5인의 상무위원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상무위원들을 휘어잡았다.

국가 경제를 책임지는 중앙재경영도소조의 조장은 경제를 책임지는 국무원 총리가 조장이었는데, 이 자리를 시진핑이 차지한 것이다. 그래서 서방은 리커창 총리를 ‘바지 총리’로 만들었다고 수군대지만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중국의 재경영도소조의 역사를 보면 장쩌민 주석 1기까지는 주석이 조장이었고, 2기에 와서 명재상으로 알려진 철혈재상, 중국의 비스마르크라고 불리는 주롱지(朱镕基) 총리가 등장하면서 총리가 조장이 되었고 후진타오 시절에도 그대로 이어져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재경영도소조의 조장이 됐다.

그런데 시진핑은 왜 재경영도소조조장을 자기가 했을까? 이는 중국의 ‘국가 백년 목표(百年目标)’와 관련이 있다. 중국은 2020년까지 샤오캉(小康) 사회를 달성하고 2050년까지 선진국 진입이라는 두 개의 백년 목표가 있다. 그 중 하나인 2020년까지 샤오캉 사회 달성의 목표는 시진핑의 임기 내에 있다.

이를 달성하면 시진핑은 중국 백년의 꿈을 달성한 주석으로 역사책에 남는다. 그래서 원래 주석의 자리였던 재경영도소조의 조장을 총리에서 주석으로 환원시키고, 2020년 샤오캉 사회 달성 목표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재경영도소조 조장 자리 역시 후진타오 시절의 왜곡을 정상화시킨 것이다.

◆당장에 시진핑 사상 삽입-독재 권력의 상징 아니다

19대 당대회 개막 이후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은 시진핑의 사상이 공산당의 규약인 당장에 삽입되는 것이 시진핑 1인 독재 권력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당장에 삽입되는 사상도 계급이 있어 ‘주의->사상->이론->론(論)->관(觀)’ 등급이 있는데 이 중 이론이나 사상으로 뒷꼬리를 달고 가면 마오쩌둥, 덩샤오핑급으로 시진핑의 권력이 부상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맞는 말일까?

역대 중국의 4명의 지도자 중 사상이 등재 안 된 지도자가 없다. 그래서 당장에 사상이 등재되는 것이 무슨 큰일이 아니라 등재가 안 되면 오히려 큰일이다. 격이 떨어진 지도자라는 것이다.

당장에 삽입된 4명의 지도자의 사상이 끝이 막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삼개대표론, 후진타오-과학적발전관 등 ‘주의-사상-이론-론-관’으로 끝난 있어서 그런 것이지 무슨 사상의 등급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시진핑 주석이 ‘시진핑 신(新)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 ‘시진핑-신사상(치국이정)’ 뭐 이런 식으로 당장에 들어가는 것인데, 여기에 사람 이름이 들어가면 신격화(神格化)되고 안 들어가면 어떻고, 끝자리가 론으로 가면 어떻고, 사상으로 가면 어떻고 하는 것은 좀 오버다.

역대 중국의 당장 수정은 주요 사안이 있을 때 마다 하는 것이고 ,이번에 시진핑의 사상을 넣으려고 일부러 개정하는 것 아니다. 그리고 역대 지도자들의 사상은 모두 삽입됐고, 시진핑만 특별히 넣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당장에 시진핑 사상 넣는 것 가지고 1인 권력 강화로 해석하는 것은 좀 과하다.

그리고 만약 시진핑 사상이 이름으로 등재된다면 시진핑은 덩샤오핑과 맞먹는 반열에 올라간다는 기사도 보이는 데 이것 역시 과대해석이다. ‘시진핑은 덩샤오핑과 동급’, ‘포스트(POST) 덩샤오핑이다’라는 해설도 많이 있는데, 이 역시 좀 어색한 해석이다. 덩샤오핑은 ‘중국 경제의 설계사’로 중국 인민을 ‘빈곤에서 탈피시킨 영웅’이다.

시진핑을 ‘신시대 개혁 개방과 현대화 건설의 총설계사’로 칭하고 ‘불평등의 탈피-시진핑’의 이미지로 간다는 것인데, 시진핑 1기의 경제적 업적은 덩샤오핑과 같이 평가하기는 아직 무리다. 성장둔화, 빈부 격차 심화, 부채비율 급등으로 지금 중국경제의 성적표를 덩샤오핑의 업적과 비교하기는 무리가 많기 때문이다.

◆당주석-총서기가 아닌 ‘당주석’으로 명칭 변경

19대 당대회 중 나오는 많은 이야기 중의 하나가 시진핑이 총서기가 아닌 당주석으로 명칭을 바꾸면 이는 마오쩌둥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이다.

중국의 제도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 아니다. 제도 변경은 큰 일이 있을 때나 하는 것이지 위인설관(爲人設官·사람을 위해서 벼슬자리를 만듦)식으로 마구잡이로 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당주석은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 주석’이다. 총서기는 임기가 있지만 당주석은 임기가 없어 종신으로 한다는 것인데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중국은 1945년 제7차 1중전회부터 1982년 12중전회때까지 존재했던 중앙위원회 책임자의 호칭이 주석이었다. 이후 1982년 9월 1일 12중전회부터는 중앙위원회 주석직을 폐지하고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대체했다.

그리고 역대 당 주석은 1명이 아니라 이미 3명이 그 직위를 거쳤다. 그 임기도 무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오쩌둥의 경우만 종신이었고, 화궈펑(華國鋒), 후야오방(胡耀邦)은 임기에 제한이 있었다. 따라서 당주석으로 제도변경은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되는 것이고, 그리고 종신제도일 수가 없다.

*위글은 전병서 본사 초빙논설위원 겸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의 블로그 '전병서의 안정적인 성공투자' 경제칼럼란에 2017년 10월 23일 게재된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관련링크.http://blog.naver.com/bsj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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