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IT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게 1990년대 후반이다. 당시 벤처 붐을 타고 수많은 IT기업들이 생겨났다. 고영화 한국혁신센터(KIC, Korea Innovation Center) 중국 센터장은 한국 IT업계의 발전상을 지켜본 IT붐 1세대 중 한명이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한 후 대우조선과 삼성SDS에서 근무하던 그는 미국 오픈티비로 자리를 옮겨 한국지사장을 지냈다. 오픈티비의 나스닥 상장으로 거액의 스톡옵션을 손에 쥔 그는 중국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회의 땅 중국. 그는 2002년에 혈혈단신으로 베이징 땅을 밟았다.
중국어 한마디 못하던 그였지만 열정 하나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바닥부터 다졌다. 그는 북경보라통신, 인포뱅크차이나를 현지 창업하고, 에버트란 등 IT업체를 거치며 중국의 IT산업 굴기를 목도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8월 KIC 중국 센터장에 부임하며 중국 IT의 핵심지대인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에 둥지를 틀었다. 그가 하는 일은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중국 진출을 지원하는 작업이다. 입주해 있는 우리나라 벤처기업을 중국의 엔젤투자자에게 연계시키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중관춘의 숱한 중국 벤처투자가와 교류했으며, 중관춘에 있는 무수한 중국 벤처기업들을 목도했다. 중국 벤처산업의 메카인 중관춘을 누빈 지 1년. IT전문가이자 중국전문가인 그가 체험한 중국의 IT산업과 벤처창업에 대해 들어본다.
"중국 교육부 통계를 보면 2016년 765만명의 대학생이 졸업했다. 이 중 16% 정도가 창업에 나섰다. 공상행정관리총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 신규 등기 기업 수는 553만개로 전년 동기 대비 24.5% 증가했다. 지난해 중국의 경우 인구 1만명당 40개의 신규법인이 생겼다. 우리나라의 경우 1만명당 19개의 기업이 생겨났다. 중국의 창업열기가 그야말로 뜨겁지만, 우리나라의 창업열기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성공사례가 많다.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텐센트의 마화텅(馬化騰), 바이두의 리옌훙(李彥宏), 징둥닷컴의 류창둥(劉昌東), 샤오미의 레이쥔(雷軍) 등이 모두 창업으로 글로벌 갑부가 됐다. 이 같은 창업스타는 계속해서 탄생하고 있다. 베이징대 대학생 다이웨이(戴威)가 2014년 창업한 공유자전거 오포(ofo)는 현재 시장가치 3조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 상하이교통대학 석사이던 장쉬하오(張旭豪)가 설립한 어러머(餓了麼)의 시장가치 역시 4조원을 넘는다. 중국의 대학생들에게 기업 취업은 큰돈을 벌 수 없으며, 자신만의 힘으로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할 수도 없을뿐더러,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킬 수 없다고 여긴다. 때문에 이들은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창업'이라는 모험에 도전한다."
-창업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은 어떠한가.
"리커창(李克強) 정부는 창업을 통해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고용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목표 아래 막대한 지원책을 펴고 있다. 당국은 월 매출액 3만 위안 이하의 소기업에 대해 증치세와 영업세 징수를 면제했고, 600억 위안 규모의 중소기업발전기금을 조성했다. 이 밖에도 400억 위안 규모의 신흥산업 창업투자펀드를 마련했다. 소기업 창업혁신 시범도시를 조성해 400억 위안 이상의 투자를 받아 260만개의 소기업을 유치하는 방안도 확정했다. 흥미로운 점은 글로벌창업모니터(GEM)의 자료에 의하면 중국의 창업지원정책보다 한국의 정책이 한수 위로 평가받았다는 것. 그런데 왜 중국의 창업열기가 한국을 뛰어넘나. 그것은 오로지 한국시장이 작기 때문이다."
-중국의 투자자들은 어떤 벤처기업에 베팅을 하나.
"투자자금은 단계별로 엔젤투자(시제품 제작 전), 벤처캐피털(VC, 시제품 완성 후), PE(상장 전)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지난해 중국시장에서 VC가 투자한 금액은 1312억 위안(약 22조원)이고, 투자건수는 3683건이다. 이들은 인터넷, IT, 통신서비스에 46.2%를 투자했고 바이오 헬스케어에 11.9%를 투자했다. 투자업종 비중으로 보자면 한국과 비슷하다. 참고로 한국시장에서 VC는 지난해 347건에 1조1000억원을 투자했다."
-창업에 나섰다가 실패하는 청년들은 이후 어떤 길을 걷게 되나.
"창업에 실패한 중국의 젊은이들은 재창업에 나서거나 취업을 한다. 중국의 경우는 창업에 실패해도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는다. 엔젤투자자나 VC는 창업가에게 연대보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반면 창업가들은 가시적인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는 낮은 급여를 감내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투자자들은 관행상 창업가에게 연대보증을 요구한다. 때문에 실패후 재기가 어렵다."
-센터장이 만약 현재 20대 초반의 청년이라면, 한국에서 벤처를 창업하겠는가, 아니면 중국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하겠는가.
"당연히 중국에서 창업한다. 창업 성공 시의 수익이 한국에 비해 10~20배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배달의 민족'의 지난해 기업가치 3500억원이었다면, 중국의 '어러마'는 3조3000억원이었다. 우리나라의 쿠팡은 지난해 기업가치가 1조3000억원이었지만 중국의 메이퇀(美團)은 18조원이었다. 같은 사업모델이지만 기업가치는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중국은 4차 산업혁명, 즉 대격변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중국에는 'AI의 알리바바', 'AI의 텐센트'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기업이 나타나기 힘들다. 왜? 시장이 작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글로벌 IT강국 반열에 들어섰다. 미래 중국의 IT 경쟁력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IT 대기업들은 자체적인 유저와 물량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클라우드 시스템이나 AI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에 맞춰 중국정부는 지난 7월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내놓았다. 계획은 2030년까지 중국이 AI분야에서 글로벌 1위에 올라선다는 거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의 IT발전상은 두려울 정도로 빠르다."
-중국시장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한국의 벤처기업가가 많다. 중국에서 어떤 분야가 유망할 것으로 보나.
"현재 한국의 기술 중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반도체 기술 외에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 앞서가는 분야가 있다면, 인공지능(AI), 증강현실·가상현실(AR·VR),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자동차, 온라인교육, 바이오, 문화콘텐츠 제작기술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 분야가 유망하다."
-좋은 기술을 중국에 가져오면 중국이 곧바로 베낀다는 우려가 있는데.
"우리나라도 과거 그랬다. 좋은 것을 보고 베끼는 것은 세계 공통의 행동방식이 아닌지 묻고 싶다. 게다가 중국 내 사업실행능력으로 따지자면 우리는 중국인을 결코 이겨낼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중국인들보다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기술적 차이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핵심경쟁력이다."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중국기업을 상대로 기술적 차이를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바이두의 대주주는 지분 30%를 보유한 DFJ라는 미국의 VC다. 알리바바의 대주주는 지분 23%를 보유한 소프트뱅크다. 텐센트의 대주주는 지분 34%를 가진 남아공의 MIH라는 위성방송사다. 이들 대주주는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업도 마찬가지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면 된다. 예를 들어 우리 기업이 중국 클라우드에 진출하고 싶다면 업무제휴와 동시에 지분투자를 해야 한다. 업무를 통해 버는 이익보다 자본투자이익이 훨씬 클 것이다. 물론 지속적인 기술개발은 비즈니스의 전제조건이다."
-중국진출을 희망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중국 공항에 도착하면 처음에 불만들을 늘어놓는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접속이 안 된다. 되는 게 없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준다. '여기는 다른 게 있다. 바이두, 웨이신, 유쿠투더우 등.' 그렇다. 중국은 다른 세상이다. 중국을 먼저 이해하고 중국을 배려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중국을 배워야 한다."
-KIC 중국의 역할과 1년의 성과, 그리고 향후 사업추진계획을 설명해 달라.
"KIC는 과기정통부 산하 비영리기관으로 한국의 우수기술기업이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베를린·워싱턴·실리콘밸리에 사무소가 설치돼 있으며, 베이징에는 지난 6월 문을 열었다. 지난 1년 동안 130명을 대상으로 창업교육을 했으며, 4차례의 투자유치행사에 100개 기업을 참여시켰다. 이들 기업을 300개의 중국 VC에 소개했다. 베이징센터의 창업프로그램을 거쳐간 15개 기업이 올 8월까지 49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향후 한국의 창업가 혹은 투자가가 중국에서 대성공을 거두는 사례를 만들고 싶다."
◆간단약력 ▲1963년 출생 ▲(안양)신성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대우조선 ▲삼성SDS ▲(미국)오픈티비 한국지사 ▲북경보라통신 ▲인포뱅크차이나 ▲에버트란 중국지사 ▲한국혁신센터(KIC) 중국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