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방송법 개정, 대북 정책에 반기를 든 한국당은 전날부터 장외투쟁으로 노선을 정하고 관계기관 항의방문 등을 진행중이다. 그러나 안보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장외투쟁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행보가 자칫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저는 원래 오늘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하기로 되어있지만, 우리 당의 입장을 국민께 생중계로 알릴 수 있는 기회까지 포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만큼 문재인 정부의 오만하고 독선적인 국정운영, 나라재정을 거덜 낼 경제포퓰리즘, 그리고 사법부 독립과 언론 자유까지 위협받는 자유민주체제의 위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인내의 한계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한국당은 본회의가 열리는 시각인 오전 10시, 본회의장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예결위회의장에서 '비상의원총회'를 열고 장외투쟁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한국당이 꼽은 투쟁의 목표는 (정부의) 방송장악 포기, 대북정책 수정 두 가지다.
홍준표 대표는 의총에서 "우리는 12년 전 노무현 정부의 사학법 개정에 맞서 넉 달간 장외투쟁을 한 일이 있고,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막았다"면서 "일각에서 원내투쟁이 옳지 않느냐고 하는데, 원내투쟁을 해본들 들러리가 될 뿐"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한국당은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이후 안보 관련 상임위원회를 제외한 국회 의사일정 보이콧을 선언했다. 전날 방송통신위원회와 대검찰청 항의방문에 나섰으며, 이날도 고용노동부와 청와대를 찾았다.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면담이 모두 불발되면서 청와대 방문은 30여 분만에 종료됐다.
한국당의 불참으로 이날 본회의가 예정돼 있던 시각, 정세균 국회의장은 한국당의 불참 통보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실험 위기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하고 민생을 챙겨야 하는 엄중한 시기에 정기국회가 원만히 진행되지 못한 점에 대해 의장으로서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양해를 구하고 회의를 2분만에 끝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개의는 하시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정 의장의 퇴장에 따라 의원들도 해산했다.
한국당이 강공모드를 택한 것의 대외 명분은 정부의 방송장악 저지 등이지만, 사실상 내포된 의도는 복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만큼 하반기 정국 주도권을 쥐고, 세를 모으겠다는 포석이다. 홍 대표도 이날 "지지율을 걱정하는데 우리는 밑바닥에 와 있고 더 이상 떨어질 게 없다"면서 "이젠 결집해서 반등할 일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장외투쟁은 야성(野性) 담금질을 통한 야당으로서의 체질 전환, 원외 대표인 홍 대표의 존재감 부각과 당 장악력 강화에도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보수정당이자 '안보정당'을 자임하고 있는 한국당이 북한의 6차 핵실험 등 안보위기 국면에서 장외투쟁을 택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국민들에게 국회 및 현안에 대한 정당의 입장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기회인 '교섭단체 대표연설'마저 거부했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국당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취소는 대안정당 책무 포기"라며 "16대 국회 이후 여야 원내정당이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포기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당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방문에 나서는 6~7일에는 장외투쟁을 중단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잠시 숨을 고르며 여론의 추이를 살핀 다음, 투쟁 수위 등을 조절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