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은 '선제타격', '화염과 분노' 등 광기에 휩싸인 말들을 주고 받으며 전쟁을 연상케하고 폭주기관차처럼 요란하게 전개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언제나 그래왔지만 한반도는 다시 한 번 전쟁이라는 엄포 속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니 말이다.
혹자는 뉴스를 통해 '불바다', '잿더미'와 같은 표현을 보고 들으며 은근히 혹여나 작은 전쟁이라도 진짜 발발해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성장한 한국사회가 발칵 뒤집힐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또한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물리적 공간을 사이에 둔 우리 최대의 '우방'은 철저한 제 3자의 시각으로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래 다 좋다, 그러나 그러한 의지들을 불사르기 전에 봐야하는 영화가 하나 있다.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적군 비행기의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방금까지 내 옆에 살아 숨 쉬던 전우는 시체가 되어 땅바닥을 나뒹군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최전방위선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적군에 완전 포위당했으며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조국, 나의 집은 바닷길에 가로막혀버렸다. ‘째깍 째깍 째깍’ 언제부터 들렸는지 모를 그 소름끼치는 초침소리와 함께하는 이 곳은,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덩케르크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철수작전이라 일컬어지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의 연합군 철수작전을 그린다.
당시 프랑스는 세계 4위의 해군력과 마지노 장군을 위시한 최첨단 방어시설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독일에 방어선이 뚫리고 결국 연합군은 덩케르크 지역에 고립된다.
총알을 피해 몸을 숨길 곳 하나 없는 해변에서 아직 얼굴에 솜털조차 가시지 않은 소년 병사들은 쓰러져간다. 무차별적으로 내리꽂히는 미사일은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천벌과도 같다.
지옥과도 같은 그곳에서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영국은 즉시 구출작전에 돌입하나 독일군은 연합군의 구조함들을 보는 족족 전투기와 어뢰로 격침시킨다. 실제로 당시 덩케르크 구출작전에서 400여 척이나 되는 연합군의 배가 격파되어 도버해협에 수장되었다. 덩케르크에는 약 40만 명의 병사들이 고립되어 있었는데, 3만 명만 구출해도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약 34만 명의 병사들이 조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역사에 내던져진 그 생명을 구한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왔다.
언제든지 전투기에 격침될 수 있는 큰 구조함의 한계를 느낀 영국은 템즈강의 보트부터 요트, 여객선까지 징발했는데, 많은 선장들과 선원들이 자국의 군인들을 구하기 위해서 이 작전에 자원했다.
옆에서 다른 배들이 독일 공군에 의해 격침되어 가라앉는 와중에도 영국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덩케르크의 해변에 닿아 자국의 병사들을 구해낸다. 또한 연료가 다 떨어져 가는 와중에도 영구의 파일럿 파리어(톰 하디 분)는 자국의 병사들을 향해 돌격하는 적군의 전투기를 목숨 걸고 격침시켰으며, 수많은 엄호병들은 해변에 남아 병사들이 무사히 조국으로 향하는 배에 탈 수 있도록 이들을 끝까지 엄호했다.
이렇게 인간의 이타심을 넘어선 인류애는 휘몰아치는 전쟁의 광기 속에서도 꺼지지는 않는 빛이 되어 꺾이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들이 도달한 곳은 그렇게나 바라던 조국, 집이었다.
놀란 감독은 우리가 전쟁 영화에서 흔히 봐왔던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이나, 전쟁터에서 피어나는 전우애, 영웅 등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대신 그는 수많은 병사들과 평범한 일반인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를 담아냈다.
전쟁이 발발하게 되어 실제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현실은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의 두려움과 그에 따른 임박한 죽음, 공포에 불과하다. 우리는 ‘나’라기 보다는 한명의 군인으로 전쟁 속에 던져질 뿐이다. 사디스트가 아닌 이상 그런 결말을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영화의 말미에서 조국에 돌아온 한 병사는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라며 자책한다. 그러자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한 시민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며 그를 위로한다. 그렇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동화 속에나 나오는 완전한 평화는 아닐지언정 우리는 더불어 잘 살아가자, 여러 선택지 중에 전쟁을 선택하지는 말아야겠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선택인지 우리는 깨달아야만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와 내 가족, 사랑하는 이들의 생존으로부터 나오는 행복이지 않은가?
격랑을 헤매는 중인 우리, 이성이 내미는 손을 잡길 기원한다. 영화 속 대사처럼, ‘Afternoon?'
오늘도 안녕한 좋은 하루이지 아니한가!
/글=이소옥 작가 #버터플라이 #청년기자단 #김정인의청년들 #지켄트북스 #청년작가그룹 #지켄트 #지켄트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