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대회는 김인경에게 악몽이었다. 그 기억은 5년 전인 2012년 4월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현 ANA 인스퍼레이션)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우승을 눈앞에 둔 최종라운드 마지막 18번홀(파5). 파 세이브만 해도 우승할 수 있었다. 남은 거리는 30cm. 가볍게 파 퍼트를 성공시킬 수 있는 순간, 김인경의 퍼팅은 거짓말처럼 홀을 돌아 나왔다. ‘호수의 여인’이 될 수 있었던 김인경은 연장전 끝에 ‘메이저 퀸’ 자리를 청야니(대만)에게 내줬다. 이후 큰 충격에 빠진 김인경은 오랜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6년 동안 우승과 담을 쌓았던 김인경은 지난해 레인우드 클래식에서 정상에 오른 뒤 올해 숍라이트클래식, 마라톤 클래식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을 알렸다. 이제 남은 건 메이저 대회 우승. 이번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김인경은 2위 조디 유와트 섀도프(잉글랜드)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시즌 3승으로 최다승에 오르며 개인 통산 7승을 수확했다. 우승 상금 50만4821달러(약 5억6842만원)도 챙긴 김인경은 시즌 상금 108만5893달러로 2013년 이후 4년 만에 ‘100만 달러’를 돌파했다.
김인경은 이번 대회 3라운드까지 6타 차 단독 선두를 기록했다. 이변이 없는 한 사실상 우승은 눈앞에 있었다. 김인경은 실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페어웨이와 그린을 지킨 침착한 경기 운영이 돋보였다. 버디보다는 파 세이브를 위한 퍼트로 선두를 유지했다.
승부처는 까다로운 17번홀(파4)이었다. 타수를 줄이지 못한 김인경을 맹타를 휘두른 섀도프가 2타 차까지 추격한 것. 김인경은 흔들리지 않았다. 17번홀에서 가볍게 파 세이브에 성공한 뒤 마지막 18번홀에서도 한 뼘 거리의 우승 파 퍼트를 성공해 ‘메이저 퀸’의 감격을 마음껏 누렸다.
김인경의 메이저 대회 우승은 의미가 컸다. AP를 비롯한 해외 언론은 김인경이 5년 전 악몽을 극복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김인경도 “아무래도 선물 받은 기분”이라며 “응원해주신 분이 많아서 부담이 컸는데, 그런 걸 이겨내니까 우승을 하게 되고 또 우승 몇 번 하니까 메이저 대회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김인경은 5년 전 악몽을 떠올리며 “그때 짧은 퍼트를 놓친 덕분에 이제는 짧은 퍼트는 거의 놓치지 않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인경의 우승으로 올해 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이 차지한 우승은 12회로 늘었다. 2년 전인 2015년 역대 최다승 기록인 15승 경신도 가시권에 들어섰다. 또 메이저 대회에서만 한국 선수가 3승을 챙겨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시즌 4승 가능성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