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그래그래] 사랑아 달려라

2017-08-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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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그래그래]
북칼럼니스트·작가

사랑아 달려라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 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버리기.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류근 시인의 시를 영원한 가객 고 김광석이 작곡해 부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노래 가사다. 이 노래는 특히 청춘 시절 달콤했거나 또는 뼈아팠던 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중년이 과거를 회상하며 ‘어느 한 날 흐린 주점에 홀로 앉아 술 한 잔 기울일 때’ 청승맞도록 즐겨 듣는 노래다.

그런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시인의 통찰은 제대로인 것일까? 나는 분명한 짝사랑을 세번 했었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옆 동네 여학생이었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나 알퐁스 도데의 ‘별’처럼 예쁜 여학생이나 여선생님에게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할 나이였으니 지금에야 보자면 그건 그리 의미 없는 풋사랑 격의 짝사랑이었다.

두 번째 짝사랑은 중 2때였다. 상대는 1학년 여학생이었는데 그녀만 보면 오금이 저렸다. 그러나 고백은 끝내 못했다. 당시 학교 분위기는 그런 짓을 했다 걸리면 학생주임과 3학년 선도부장에게 피곤죽 되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극히 소심했던 내가 고백을 했을 리 만무했다. 그 여학생을 보면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면서 아드레날린 분비가 급증했지만 상사병으로 앓아 누웠던 것도 아니어서 그 또한 졸업하면서 흐지부지 끝났다.

세 번째 짝사랑은 대학생이 되면서 제대로 찾아왔다. 상대는 다른 단과대의 신입생이었는데 교정에서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육신이 마비됐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세상에 태어나 그런 천사는 처음이었다. 그날부터 나의 모든 감각은 그녀 곁을 맴돌았다. 물론 그때도 역시 지독하게 소심했던 나는 고백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감히 너 따위가 내게’라는 그녀의 콧방귀에 더 큰 상처를 받을까봐 고백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남 몰래 끙끙 앓았다. 절친한 선배에게 사실을 털어놓았지만 그 여학생을 목도한 선배가 내게 한 말이라고는 ‘꿈 깨라’였다. 대단했던 그녀 앞에 나의 상품성이 형편 없다는 것을 선배 역시 직관했던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아팠다. 그녀가 같은 과 남학생이나 동아리 남학생들과 교정에서 어울리는 것을 목격한 날엔 어김없이 희미한 두통이 찾아왔다.

한 번은 잠실종합운동장에서 학교 운동부를 응원하는데 스탠드의 정반대 편에 있는 그녀가 내 눈에 선명하게 꽂혔다. 내가 그때 왜 우리 학교 응원단의 반대쪽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와 함께 있는 곳이면 거리 불문하고 내 눈은 ‘육백만 불의 사나이’로 변했다. 이 대목은 ‘안나 카레니나’에서 스케이트장에 막 도착한 레빈의 키티에 대한 짝사랑을 묘사한 톨스토이의 절절한 문장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내 짝사랑이 대문호의 짝사랑에 대한 통찰에 비추어봐도 진실했었다는 반증이다.

그렇게 2년이 흐르자 이젠 그녀를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 앞에서 ‘힘 없이 녹아 내리는 촛농’일 뿐이었던 나의 신열은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빙자해 학교를 떠나면서 겨우 온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너무 아파서 스스로 그 사랑을 포기해 버렸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의 비극이었다.

그런데 4년 전에 졸업 30주년을 기념해 동창회에서 모교를 방문하는 이벤트가 있었고 거기에 그 ‘아줌마’가 나왔었다는 말을 최근에야 전해 들었다. 애써 잊었던 짝사랑의 기억이 금방 되살아났다. 아! 그녀는 여전히 그때 그 천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을까? 거기서 그녀를 맞닥뜨렸을 때의 부자연스러움을 생각하자니 그날 모교에 안 가기를 잘했다고 안도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번 달에 빠지면 안 되는 동창행사가 있는데 거기에 또 그녀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 아닌가! 생각이 많이 복잡하다. 혹시 그녀가 나오면 34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번에 그녀를 알아볼 텐데, 이제라도 인사를 건네 생애 처음 그녀의 목소리라도 들어볼까? 모른 척 외면해? 눈인사라도 슬쩍 해봐? 그녀도 나를 반가워할까?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의 짝사랑을 당시의 그녀도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오! 신이시여! 그녀가 진짜 온다면 나는 도대체 어찌 하오리? 아아아! 정녕 어찌 하오리! 흰머리 듬성듬성 배불뚝이 중년 남자의 이 가련하고 복잡한 심사가 그토록 처절했던 젊은 날 짝사랑의 끝자리라면 그래, 결국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나?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이었나?

그리하여 나는 오늘 ‘한 잔은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나를 위하여, 한 잔은 그 아줌마를 위하여, 나머지 한 잔은 이미 그리 정하셨던 신을 위하여’ 마시기 위해 혼자서 흐린 술집으로 가련다. 김광석의 노래가 흐르는 술집으로.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노래했던 어떤 시인은 틀렸다. 그건 신의 일이래도. 검정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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