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금융사들의 불만은 만만치 않다. 빚을 갚지 않고 5년 이상만 버티면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 모럴해저드를 정부가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새 정부의 눈치를 보고 소멸시효채권 소각에 대한 이슈몰이를 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31일 금융 공공기관장, 금융권별 협회장을 불러 모아 "장기연체로 인해 제도권 금융에서 탈락하고 오랫 추심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주겠다"며 소멸시효완성채권 처리방안을 밝혔다.
이에 따라 먼저 국민행복기금과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소멸시효완성채권 등 회수 불가능한 채권 약 21조7000억원이 8월말까지 소각된다. 이로 인해 약 123만명의 채무자들이 재기할 수 있을 예정이다.
최 위원장은 "이는 결코 단순한 비용이나 시혜적 정책이 아니다"라면서 "경제 활력을 높여 생산적 금융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소멸시효완성채권이란 상환 의무가 사라진 채권이다. 시효는 상법상 5년이지만 법원의 지급명령 등으로 시효가 최대 25년으로 연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간 제윤경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정치권은 금융사들이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소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대부업체들이 금융사에서 싼 값에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사들인 뒤, 원금의 일부를 갚으면 빚을 모두 면제해주겠다면서 채무자들을 속여 소멸시효를 부활시킨다는 지적이다.
금융위는 이러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금융공공기관은 물론 은행, 저축은행 등 금융사들이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자율적으로 소각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민간 부문의 소멸시효 완성채권은 지난해 말 기준 4조원 가량(91만2000명)에 달한다.
최 위원장은 "이번 조치가 단순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제도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이 노력은 반드시 시장과 함께 해야만 한다"고 독려했다.
그러나 업계는 속이 편하지 않다. 채무자의 모럴해저드 야기는 둘째 치고 지난해부터 일부 금융사들이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소각하기로 결정했는 데, 새 정부 들어서 마치 새로운 문제인양 이슈몰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정무위를 중심으로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소각하라는 주문이 빗발쳤고 이에 일부 금융사들이 대규모의 채권을 소각했다"며 "새 정부가 소멸시효완성채권 소각을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이에 대해서 지나치게 이슈몰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치권의 눈치를 봐도 너무 본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