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홍콩 토과완(土瓜灣)에 위치한 쇼핑몰 인근에서 한 관광버스가 85세의 할머니와 55세의 필리핀인 간병인 남성을 쳐 숨지게 하는 사고가 있었다.
사고를 낸 버스는 홍콩과 중국 본토를 오가는 전세버스로, 원래 승객 승하차가 금지돼 있는 쇼핑몰 앞 도로에서 관광객들을 내려주고 출발하다가 사고를 냈다.
이번 교통사고에 홍콩 민심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홍콩의 유력 일간지인 ‘빈과일보(蘋果日報)’의 기사 댓글은 중국 본토 출신 관광객들을 비난하는 글들로 가득하다.
중국 본토인들에게 홍콩은 원하면 아무 때나 방문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하의 홍콩은 중국인이라 하더라도 입경 시 통행증이나 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홍콩에 인접한 광둥(廣東)성에서는 일찍부터 홍콩의 생필품을 사다가 중국에 되파는 병행수입(水貨)이 성행했다.
그러다 2002년 중국인 관광객 쿼터제도(1일 1500명)가 폐지되고 개인이 통행증만으로 홍콩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도시가 중국 내 49개 도시로 확대되면서 유커들이 폭증하게 됐다.
유커의 ‘습격’은 인구가 700만에 불과한 홍콩의 물가 상승 및 생필품 부족 현상을 가져왔다. 홍콩 접경 지역인 선전(深圳) 지역 주민들에게 무제한 방문 복수비자 제도가 실시되자 병행수입이 폭증했다.
이로 인해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나 선전과는 가까운 교외 지역인 신계(新界)의 생필품 물가가 도심지역보다 비싼 기현상이 벌어지고 유커들의 싹쓸이로 인해 때로는 물건 자체를 살 수 없는 등 일반 시민들의 일상이 위협을 받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커들을 태운 버스는 쇼핑센터 근처에서 상시 정차하며 가뜩이나 포화 상태인 홍콩의 도로를 마비시켰고, 관광객들은 물건이 가득 찬 커다란 여행가방으로 인도를 점거해 버렸다.
특히 노상방뇨 등 일부 관광객들의 몰지각한 행동은 홍콩인들의 지탄의 대상이 됐다. 홍콩인들은 ‘메뚜기떼(蝗蟲)’라는 경멸적인 표현으로 유커들을 비하했다.
유커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던 것이 바로 지난 2015년 ‘분유 파동’이다. 본토에서 발생한 멜라민 분유 사건 등으로 인해 자국 분유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자, 유커들이 홍콩산 분유를 싹쓸이해 홍콩 전역에서 분유가 동나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당시 일부 상점에서는 광둥어를 쓰는 홍콩인들에게는 분유를 팔지 않고 보통화를 쓰는 본토 출신들에게만 웃돈을 얹어 분유를 판매하는 얌체짓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홍콩 정부는 병행무역을 근절하기 위해 유커들의 1인당 분유 구매량을 1.8kg들이 두 통으로 제한하고, 선전 주민들의 홍콩 방문 복수비자를 주 1회 방문으로 제한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러나 이러한 ‘반(反) 유커’ 분위기는 홍콩인들에게 ‘양날의 칼’이 돼 돌아왔다.
중국 인터넷에서 홍콩의 반중 시위를 괘씸하게 여기는 네티즌들이 늘어나면서 유커들이 한국이나 일본,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홍콩의 소매업과 관광업은 지난 몇 년간 불경기에 허덕이고 있다. 홍콩 소비시장의 3분의 1을 담당하던 ‘큰손’이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렸다.
홍콩 통계국에 따르면 2016년 홍콩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6.7% 감소했으며, 이는 전체 관광객 수 감소(-4.5%)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관광객 감소로 인해 같은 해 홍콩의 소매 판매액 역시 전년 대비 8.1% 감소한 4366억 홍콩달러(약 63조6400억원)를 기록했다.
내수라는 방어막이 없이 중개무역이 경제의 98%를 차지하는 홍콩 경제에서 유커의 효과는 ‘롤러코스터’와 같다.
유커의 지나친 증가로 인해 인플레이션과 사회 혼란을 겪다가, 유커들이 빠지니 경제 침체의 늪에 빠졌다.
지난 3월 행정장관 선거에서 중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된 캐리 람 행정장관 예정자는 홍콩 반환 20주년인 오는 7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유커의 수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은 홍콩의 민생경기 회복 및 시내 혼잡 해소, 나아가 홍콩인들의 반중감정 완화와 관련된 람 예정자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