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새 정부가 기업들에 요구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헷갈린다고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하소연한다.
이 말이 그저 진보 정부에 저항하기 위해 하는 넋두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말 그대로 "잘 모르겠다"며 고민한다. 자기 말 한마디 실수에 수많은 직원들이 생계를 꾸려가는 기업 자체가 휘청일 수도 있다. 이들은 요즘 들어 심사숙고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따른 무관세 혜택을 조금이라도 보기 위해 멕시코에 투자한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노골적인 요구에 큰 낭패를 봐야 할 판이다. 속이 영 불편하다.
그렇다고 안방인 국내라고 해서 맘이 편한 것은 아니다. 일자리를 강조하는 새 정부를 나몰라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 실업률이 지난달 11.2%까지 치솟는 등 고용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 더욱더 모른 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미국과 국내에 동시에 일자리를 만든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국내외 수요가 있어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판단이 서야 한다. 하지만 올들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고 중국 등 경쟁국과는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사업 기회를 찾아서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는 게 좀체 쉽지 않다.
조선과 중공업 등 국내 간판 산업들은 더 헷갈린다. 이들 산업은 인력을 대규모로 쓰고 있지만 최근 몇년간 수주 부진으로 기존 인력도 놀려야 할 판국이다. 신입사원 채용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 조선과 중공업은 대부분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그 아래 수많은 중소 업체들이 하청을 받아 살아가고 있어 일자리 확충의 묘책도 딱히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발표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면 좋다. 최저임금을 많이 받으면 더 좋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더더욱 좋다. 비정규직의 고충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써야 하는 직종·기업이 있고 사정상 비정규직이 돼야 하는 근로자도 있다. 또 비정규직과 저임금으로 버텨야 하는 중소기업들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말한 정책들은 과연 무엇을 목표로 할까? 다분히 이상적인 이런 정책들이 현실화할 경우 버틸 우리 기업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래서 정부 당국에 부탁하고 싶다. 편의점주 등 장사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이나 직원 월급을 걱정하는 기업인들의 애로를 먼저 염두에 두고 분명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세운 다음 ‘현장에서 작동하는 정책’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사에서 한 말이기도 하다.
기업인들은 일자리 확대와 양극화 해소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정부가 11조2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투입해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고 하는데, 어느 기업이 이를 외면하겠는가. 한국 기업들치고 그럴 기업은 없다.
대기업 또한 개혁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기업 관행은 기꺼이 고칠 의지가 있다. 그리고 왕성한 투자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투지가 넘쳐난다. 이런 기업을 상대로 새 정부와 정치권이 무조건 매도하고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책 목표도 없는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곤란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의 목표는 과연 무엇인가?
김종수 부국장 겸 산업부장 js333@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