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자 SNS 속지 말자 SNS
트위터(Twitter)를 먼저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프라인에서 알던 사람은 물론 전혀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과 사귀면서 속도감 있는 정보와 의견의 교류에 감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 작가, 전문가 등 대중스타가 아닌 일반인은 아무리 떠들어봐야 별볼일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마치 거대한 벽 앞에서 메아리 없는 고함을 혼자서 지르는 것처럼.
오프라인의 지인들과 먼저 페친(페이스북 친구) 관계를 맺고 그 지인의 ‘친구’들로 차츰 넓혀가는 페이스북의 교류방식이 익숙했다. 게시글에 대한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의 구체적인 반응도 트위터보다 훨씬 실용적이었다. 트위터가 사람 관계를 얇고 넓게 가져간다면 페이스북은 상대적으로 깊고 좁게 엮임으로써 대중적 유명세 없이도 그럭저럭 버틸 만해 벌써 8년이나 됐다.
SNS 역시 사람들이 모여 아옹다옹하는 곳이다 보니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상다반사는 오프라인 광장에서 벌어지는 것들과 다를 게 거의 없다. 웃음, 눈물, 시기, 질투, 분노, 좌절, 진심, 위선, 허세, 허영, 사기에 끝내는 ‘작업’까지 사람 사이 있을 것은 다 있다.
단, SNS의 명백한 맹점이 있다면 그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 준다’는 것이다. 고충 하나 없는 사람은 없는 법인데 SNS에는 늘 유쾌발랄과 행복, 실력만 범람하니 ‘나는 불행한데 남들은 다 잘 나가고,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는 허상에 속기 십상이다. 그것을 잘 식별해야 한다. 식별력은 상대가 SNS를 쓰는 목적을 읽는 것이 먼저다.
정치 하는 SNS. 정치인과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주로 자신의 실적을 자랑하거나 정치적 발언을 일삼는 것이 목적이다. SNS 유형 중에 가장 치열하고 가장 피 튀긴다. 여기에 함부로 엮였다가 ‘좌표’로 찍히면 문자폭탄을 감수해야 하므로 웬만한 맷집이 아니라면 적당히 살살 관여해야 한다. 이 쪽이 사용자 층이 가장 두꺼운 것 같다. 궁금한 것은 사람이 ‘정치적 동물’이라곤 하지만 정치인 아닌 시민이 하루 종일 SNS에 붙어 정치적 독설을 뿜어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밥은 제대로 먹으면서 저럴까, 하는 것이다. 독설은 자신의 몸도 같이 해치는데 말이다.
장사 하는 SNS. 자신이 생업으로 하는 일을 홍보함으로써 매출을 늘리거나 이름값을 높여 몸값을 불리려는 것이 목적이다. 기업가, 자영업자, 작가, 시인, 예술인, 기자, 변호사, 상품 판매인, 서비스업 전문가 등이 주로 이 목적에 충실하다. 상대적으로 청정하고, 배울 것도 많지만 개인 간 실력 차도 분명하다. 프로는 장사 하는지도 모르게 장사를 하지만 아마추어는 초장에 목적을 뻔히 드러냄으로써 거부감을 사 별 재미를 못 보기 십상이다. 무림도처유고수, 내공 깊은 프로들이 아주 많다. 물론 하루아침에 그리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SNS도 공부와 경험이 필요한 것.
인맥관리 SNS. 이것은 독자적 목적이라기보다 정치와 장사 등 다른 목적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SNS의 가장 위력적인 효과를 느끼기 안성맞춤인데 관계의 끈을 놓쳐선 안 될 ‘갑’을 이곳에서 간편하게 ‘관리’함으로써 오랫동안 오프라인에서 못 보더라도 그 간격을 메울 수 있다. 이득이 될만한 제 3자를 이곳에서 전략적으로 사귀었다 필요할 때 ‘표 안 나게 부탁’을 해보면 SNS의 위력에 감탄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생면부지의 청와대 높은 사람과 무려 ‘통화’까지 한 적도 있다. 누구라도 인맥의 7단계만 거치면 트럼프 대통령과 연결된다는 연구결과도 실제 경험해보면 경이롭다. 인맥관리와 결이 다른 친인척, 동창회, 향우회 같은 ‘화목과 결속의 SNS’도 이 범주에 있다.
불순한 SNS. 사람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있기 마련. ‘어장관리’나 허영심 충족을 위한 기만, 나 아닌 나를 새롭게 창조해보려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심지어 범죄를 꿈꾸는 사람도 없지 않다. 대개 나의 목적이 분명하고 진실되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쉽게 엮이지는 않으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당연히 SNS에서 신뢰를 얻으려면 신분부터 명확히 밝히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리고 친구를 배려하는 것이 두 번째. ‘친구’에게는 일체 무관심 하면서 ‘관계’를 기대한다는 것은 씨를 뿌리지도 않으면서 열매를 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명심할 것은 궁극의 목적이 무엇이든 진짜 ‘선수’들은 목적의 ‘전략적’ 은폐와 엄폐로 ‘친구 관리’에 매우 능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