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창환 기자 = 과거 40여년간 사람들의 접근을 철저히 막아섰던 1급 보안시설이 곧 '문화가 꽃피는 장소'로 탈바꿈된다. 바로 서울 마포구에 자리한 문화비축기지다. 전체 면적은 14만여㎡로 서울광장 10배 규모에 내부는 지열을 활용한 전기 없는 냉난방,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로 가동된다.
지난 9일 찾은 문화비축기지 현장은 이달 중 베일을 벗기 위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우리나라의 4강 신화를 써낸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렸던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아 친근감을 더한다. 서울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인근 공사장 입구에는 10여명의 인부들이 전선매립 작업에 열을 올렸다.
서울시는 그동안 방치해온 석유저장고를 2015년 말 친환경 복합문화장소로 새 숨결을 불어넣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산업화시대 전유물로 지니는 역사성을 지키는 동시에 그야말로 공터를 '문화쉼터'로 변모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아직 공원 곳곳에서 도로 포장과 원목으로 바닥을 마감하는 등 미완성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 옆으로 넓게 펼쳐진 원형의 부지는 향후 다채로운 공연과 시민들 휴식 등 다용도로 쓰일 '문화마당'이다. 200여m 언덕길을 올라가면 새로 지어진 6번 탱크인 '정보교류센터'에 다다른다. 유일한 신축 건물이지만 1·2번 탱크에서 해체한 철판을 이용해 외관 및 내부를 꾸몄다는 점에서 재생사업과 맥이 이어진다.
총 면적 14만m² 부지에는 기존 5개의 유류 저장탱크가 있었다. 정보문화센터 뒤 1~5번 탱크는 폐산업시설에서 시민들의 보물로 되살아나고 있다. 전시장 등으로 쓰일 1번 탱크에는 유리로 만든 다목적 파빌리온이 마련됐다. 저장탱크 특유의 원형 디자인과 더불어 바깥 경관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 느낌이 신선하다.
2번 탱크는 공연장으로 재구성된다. 1층 실내 공연장은 민간에서 만났던 것과 비교해 천장이 낮았다. 아울러 무대 앞쪽의 벽을 상대적으로 높여 안락함을 선사했다. 대대적인 공사가 불가능한 재생사업 특성의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린 것이라는 게 현장 관계자 설명이다. 3번 탱크의 경우 옛 모습 그대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 저장소로 만들어졌을 당시 국방색으로 꾸민 외관이 크게 훼손되지 않은 모양새다.
4번과 5번 탱크는 각각 기획전시장, 상설전시장으로 선보인다. 내부로 들어가면 대략 15m 높이까지 천장이 시원하게 뚫려서 마치 동굴 안을 연상시킨다. 여기저기서 냉·난방설비와 배관, 전선 등 정리일정이 분주했다. 여러 탱크에서 뜯어낸 철판은 벽면에 다시 장식해 역사 및 문화의 보존성을 강조했다.
이외에 관리사무소, 하역장, 변전실 등 각종 지원시설 인근은 산책로와 야생화 정원으로 단장이 이뤄졌다. 문화비축기지는 당초 이달 중순께 문을 열 계획이었지만 그 시기가 조금 늦춰지고 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생태문화시설로 시민들에게 돌려주려 완성도를 한층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시 최현실 푸른도시국 공원조성과장은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문화교류의 장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아울러 '문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설 곳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며 "문화를 단순히 쌓는다는 개념 이상으로, 공유하고 재생산해낼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