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 칼럼] 북한 핵은 더 이상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다

2017-05-30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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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영진 초빙논설위원]

북한 핵은 더 이상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다.
강 영 진(초빙 논설위원·전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문재인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다. 지난 9년 동안 남북관계는 남북분단 이래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정도다.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새로운 변화를 예상하는 것이 당연한 셈이다. 그 변화가 어떨지를 알기 위해 남북관계가 지난 9년 사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자.
우선, 북한의 정권이 바뀌었다. 김정은은 20대에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독재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됐다. 지난 5년여 동안 불안정한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광범위한 숙청작업을 진행하면서 ‘포악한 권력자’라는 악명을 얻었다. 핵·미사일 실험을 거듭하면서 북한은 70여년의 국가 역사상 어느 때보다 극심하게 국제사회로부터 배척되고 있다.
다음으로,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러시아의 국내 정치와 국제적 역학관계가 급변하고 있다. 나아가 트럼프 미 대통령 등 국제정치 주인공들이 한반도 문제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예측이 쉽지 않다. 이 점은 우리에게 한반도 정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반면 자칫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다만 국제 정세 변화의 진폭은 1, 2차 세계대전과 냉전, 공산권의 붕괴와 탈냉전 시대의 도래 등 지난 100년 동안 벌어진 일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지난 100년 동안 한민족은 국제정세의 급변 속에 식민지, 전쟁, 분단이라는 최악의 역사를 써왔다. 이번엔 다르다. 국제적·경제적·문화적 영향력이 크게 성장한 한국의 위상을 감안할 때 최근 정세는 ‘위기보다는 기회’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제대로만 대처한다면 말이다.
세 번째로, 북한 핵보유 문제가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로 바뀌어 가고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취급해왔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1994년의 제네바 북·미 합의, 2005년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 등은 북한 핵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는 믿음 아래 이뤄진 일들이다. 그러나 이들 합의는 이런저런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그 사이 북한은 네 차례의 핵실험과 수십 차례의 미사일 실험을 강행했고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
이제 북한 핵문제는 해결(解決)을 위한 노력보다 해소(解消)되기를 기다리는 일이 현실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무력을 써서라도 해결하겠다고 할 것처럼 말하지만 그의 말이 블러핑(bluffing)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한이 한국·일본·나아가 오키나와와 괌의 미군기지까지 핵으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금,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무력을 쓴다는 건 ‘3차 세계대전’ 이상의 비극을 초래할 위험성이 크다. 그 자체로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막아야 하는 일이다.
지난 20년 한국의 햇볕정책과 압박정책은 북한 핵문제에 관한 한 해결을 표방했다. 햇볕정책은 남북관계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진전시킴으로써 북한이 스스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 했다는 점에서 해결보다 해소에 방점이 있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이 점을 무시하고 남북관계 확대를 통한 ‘해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핵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한 단계에 이르지 않았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1994년 북·미 핵합의가 무산되는 과정을 지켜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판단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다. 그 실수가 북한 핵개발 진전을 방치 내지 방조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압박정책 역시 이 핵문제를 개선 내지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속화했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 정부의 무시정책과 겹쳐 한국 정부의 압박정책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에 더욱 매달리도록 만든 것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가속화하는 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될 수밖에 없는 ‘초현실적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비정상적으로 인권침해적인 북한체제에 대해 국제사회가 관대하게 방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갈수록 압박이 커질 것이 확실하다. 북한 역시 이 점을 잘 안다. 그렇다고 붕괴 위험을 무릅쓰면서 체제를 변화시키기도 어렵다. 결국 북한은 핵개발을 통해 국제사회의 압력에 맞설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북한의 핵개발 노력은 임시방편의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스스로 탈출구를 찾는 것이 불가능해져 버린 비극적 상황이다.
북한이 못한다면 국제사회가 대신 북한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를 통해 북한 핵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수십년의 경과를 감안하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좁혀진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직접적으로 추구하기보다 여건이 달라져 저절로 ‘해소’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획기적인 해결책을 추구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남북관계의 새 틀을 짜는 것이 새 정부 대북정책의 과제다. 다만 핵문제가 남북관계의 전부가 되도록 허용해선 안 된다. 그럴 경우 핵문제 해결이 아닌 해소마저도 가능하지 않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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