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전관예우 논란…공정위 전문성 훼손 지적도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서동원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뒤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이 매각해야 하는 주식 수를 줄여줬다는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서 고문은 김학현 당시 부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처분해야 하는 주식 수를 낮춰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고문이 공정위 심사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진 전원회의 위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 수 있었던 것은 '공정위 부위원장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과 관련이 있다.
대형 법무법인들이 공정위 공무원 출신을 경쟁적으로 영입하는 이유로 그들의 전문성과 함께 그 이면에 있는 이런 '전관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공정위 공무원들의 대형로펌행이 항상 '뜨거운 감자'와 같은 논쟁거리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 전직 위원장·상임위원·사무처장 등 고위 간부 즐비
29일 김앤장·광장·세종·태평양·화우 등 5대 대형로펌 홈페이지에 공개된 공정거래팀 구성원의 이력을 보면 총원 367명 중 공정위 출신은 52명이다.
이중 세종·태평양 공정거래팀은 공정위 공무원 출신이 무려 30%에 육박했고 이들 중에는 1급 이상 공무원 출신도 다수 눈에 띄었다.
5대 로펌 중 공정위 출신 공무원 비율이 가장 높은 법무법인은 세종으로 32명 중 9명(28.1%)이 전직 공정위 공무원이다.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김범조 전 조사국장이 고문을 맡고 있고 임영철 전 정책국장은 대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노 전 위원장은 위원장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5대 대형로펌에 속해있다.
법우법인 태평양 공정거래팀은 총 29명으로 이중 공정위 출신 공무원은 8명(27.6%)이다.
태평양 공정거래팀에는 이병주·정중원 등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판사' 역할을 하는 상임위원 출신이 2명이나 포함됐다.
공정위에서 경쟁정책과장을 지낸 김윤수 부이사관은 공인회계사로 근무 중이다.
법무법인 화우 공정거래팀은 37명 중 7명(18.9%)이 공정위 출신이다.
1급 이상 고위 간부 출신으로는 손인옥 전 부위원장(고문), 한철수 전 사무처장(고문) 등이 포진해있다.
나머지 4명은 고위공무원 출신은 아니지만 모두 전원회의 업무를 총괄하는 심판관리실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법무법인 광장 공정거래팀은 78명 중 12명(15.4%)이 전직 공정위 공무원들이며 조학국 전 부위원장이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법무법인 김앤장 공정거래팀에는 가장 많은 16명의 전직 공정위 공무원이 있지만 공정거래팀 규모(191명)가 커 비중은 8.4%로 가장 작았다.
하지만 김병일·서동원 전 부위원장, 안영호 전 상임위원, 이동규 전 사무처장 등 전직 1급·차관급 인사가 대거 포함돼 국내 최대 로펌의 위상을 과시했다.
5대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공정위 출신은 변호사 자격증이 없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고문(17명)·전문위원(16명) 등으로 활동 중이다. 변호사(외국변호사 포함)는 18명, 공인회계사는 1명이었다.
◇ 끊이지 않는 전관예우 논란…공정위 전문성 약화 지적도
공정위에서 퇴직한 공무원들의 로펌행은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앞서 언급한 서 고문의 사례처럼 전관예우 논란이 끊이지 않아 외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대형로펌이 공정위 출신 공무원을 영입한 뒤 과징금 인용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 대형로펌이 공정위 과장급 인사를 영입한 뒤 과징금 감경 실적이 대폭 개선됐다며 전관예우 의혹을 제기했다.
이 로펌은 해당 인사를 영입하기 직전 2년간 공정위에 낸 과징금 이의신청이 단 한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공정위 인사 영입 직후 과징금 부과 이의신청 중 5건이 인용돼 총 76억6천만원의 과징금을 줄이는 성과를 냈다.
공정위가 처리하는 사건은 증거 확보가 핵심인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경제 분석을 통해 경쟁제한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입증하느냐가 관건이다.
공정위와 소송을 벌이는 로펌들이 공정위 출신 공무원을 전문위원·고문 등으로 영입하는 것은 경제분석 능력에 특화된 그들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대형로펌이 확보한 전직 공정위 공무원들의 전문성은 공정위와의 소송전에서 거꾸로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을 낮추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형로펌으로 자리를 옮기는 서기관·부이사관급 공정위 실무자들이 늘어나면 공정위의 전문성이 약화돼 소송 대응력도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때문이다.
새 정부가 재벌저격수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지명하며 공정위의 위상 강화를 강조하고 있어 앞으로 공정위의 제재를 방어하기 위한 법무법인의 전관 영입 경쟁은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
서기관급 이상 공무원이 퇴직할 때 3년간 관련 부서 업무(국장급 이상은 관련 조직 업무)를 하는 하지 못하도록 한 공직자 취업제한 규정을 더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 출신 공무원들의 로펌행에 대해 "공직자 취업제한 규정의 범위 안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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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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