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수급노인에 '폭탄 요금제'…노인 상대 악덕 상술 기승

2017-05-18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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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소비자 문제 사회 전면에 부각하고 악덕 상술 단죄해야"

(의정부=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1. 지난 1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홀로 사는 A(82) 할머니는 이동통신 요금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평소 한달에 3천원 정도 요금을 냈는데, 6만원이 넘게 청구된 것이다. 한 달 전 집을 찾아왔던 이동통신 방문 판매 업자의 말을 믿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재미있는 채널을 더 많이 볼 수 있고, 휴대전화도 좋은 기종으로 바꾸는데 공짜나 다름없다"는 말에 TV를 벗 삼아 지내던 A 할머니는 별 의심 없이 계약했다. 지속적인 항의에 업체는 마지못해 환불해 줬지만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 역시 경기도에서 홀로 사는 B(84) 할머니는 한 업체의 정수기를 렌털해 매달 돈을 내며 3년 이상 쓰고 있었다. 지난해 "같은 가격에 더 좋은 정수기로 교체해 주겠다"는 매니저의 제안에 할머니는 수락했다. 하지만, 다음 달부터 요금이 1만원 이상 더 나왔다. 알고 보니 가입 후 3년간은 비싼 요금을 부담하고, 이후부터 이전과 같은 가격이 적용되는 방식이었다. 할머니는 항의하며 계약 해지를 요구했지만, 업체는 정상적인 계약이라 해지가 어렵다는 답만 보내왔다.

이동통신업체 상품, 건강식품 등 각종 방문 판매와 상조 서비스를 비롯한 소비 영역에서 노인의 지갑을 노리는 악덕 상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지만 피해 예방과 구제 대책은 부족해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서울에 사는 65세 이상의 노인 300명을 조사한 결과, 최근 1년 사이에 각종 악덕 상술 판매단에게 피해 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무려 77%에 달했다.

상품을 판매한 방법도 다양해 '사은품(공짜) 제공으로 유인'(70.7%)이 가장 많았고, '무료관광 제공으로 유인'(17.3%), '홍보관(떴다방) 유인'(14.3%)이 그 뒤를 이었다.

소비자원의 전체 소비자 상담 건수 중 60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은 2011년 6.1%에서 2015년 8.7%로 증가했지만 노인들은 피해를 봐도 구제에 소극적이거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2015 한국의 소비생활지표'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령자의 리콜 참여경험률(8.4%)과 의사률(38.6%), 소비자 분쟁 의뢰 경험률(15.8%)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낮았다. 반면 이의제기에 대한 사업자 대응의 불만률(62.3%)과 품질대비 비싼 가격 경험률(26.3%)은 높았다.

이처럼 고령 소비자 피해 문제가 심각하지만 대책은 예방 교육 정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18일 "정부와 민간단체가 노인을 상대로 악덕 상술에 대해 홍보하고 교육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정보 취득 능력이나 판단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노인 계층의 특성상 한계가 있다"며 "노인들 역시 소비자로서 권리를 가진 성인이기 때문에 일단 계약을 하면 뚜렷한 기만 혐의가 나오지 않는 이상 구제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는 만큼 사회적인 관심과 함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일본의 사례에 주목한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은 소비자청이라는 별도의 관청을 설치하고, 소비자계약법 등 제도를 통해 노인 소비자를 보호하고 있다.

노인을 상대로 한 방문판매의 경우 필요 정보 공개와 계약 요건 등을 까다롭게 만들고, 구입 수량이나 액수에 제한을 둔다. 일단 피해가 발생한 경우 수월하게 환불 및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피해 예방을 위한 정부와 지역사회의 보호망도 잘 갖춰져 있다. 노인이 직접 소비 피해를 신고하지 않아도 노인을 돌보는 복지사가 피해 상황을 발견하면 대신 신고할 수 있다. 필요한 곳에 수시로 강사를 파견해 악덕 상술 예방 교육을 할 수 있는 '강사 배달' 서비스도 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특히 전 재산을 탕진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어 극단적인 선택에까지 이르는 피해를 예방하는 데 특히 효과적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노인 소비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사회 전면에 부각해야 한다"며 "악덕 상술을 법적, 제도적으로 단죄하는 동시에 노인 소비자에 대한 피해 예방과 교육활동을 통해 이들이 현명하면서도 적극적인 소비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jhch793@yna.co.kr

(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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