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작가 "보이는 것·보이지 않는 것 경계에 대한 관심사 풀어내"
(베네치아=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 축제로 꼽히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현대 미술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만큼 초청 작가를 엄선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이어붙여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로 잘 알려진 이수경(54)과 미국을 본거지로 영상과 사운드, 조명, 조각, 드로잉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는 김성환(42)이 그 주인공.
총 9개로 이뤄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세부 분야 가운데 전통 부문에서 초청된 이수경 작가는 11일 베네치아 해안가의 옛 조선소를 개조한 전시장 아르세날레에 설치된 '번역된 도자기: 신기한 나라의 아홉 용'이라는 제목의 초대형 작품으로 관람객을 맞이했다.
길이 5m, 무게 1.5t에 달하는 그의 작품은 아르세날레의 중심부를 차지하며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수경 작가는 "이번 작품을 만들기 위해 400∼500개의 깨진 도자기를 족히 사용한 것 같다"며 "제목은 중국의 설화 중 인간 세계에서 마술적인 효험을 펼치는 용의 아홉 자식 이야기에서 따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도자 명장들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깨어 버린 도자기들의 파편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해 퍼즐을 맞추듯이 이어붙이고, 깨진 틈새를 불상에 사용되는 것과 똑같은 금박으로 덮는 방식으로 무한히 증식해 나가는 듯한 새로운 도자기를 완성했다.
작품을 관람한 캐나다 출신 큐레이터 타일러 러셀은 "과거부터 외세의 침략을 많이 겪으며 깨지고, 파편화되면서도 면면히 역사를 이어온 한국이라는 나라처럼, 깨어진 도자기 조각들이 서로 결합돼 새롭고, 더 아름다운 작품으로 재탄생한 게 인상적"이라고 감상평을 밝혔다.
이 작가는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라며 "사실 도자기가 동양의 전통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관람객들의 질문이 동양 전통을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소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구절이다. 제가 뭔데 감히 전통을 재해석할 수 있겠느냐"면서도 "하지만 현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에 대한 관념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화두가 된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런 화두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가 살풀이 교방춤과 정가 등 한국 전통음악을 배우고, 매료되는 결과로 이끌었다.
그는 '전통을 추구하는 작가라 촌스럽다'는 세간의 평가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전통 부문으로 초청돼 어깨가 더 무겁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는 이날 오후에는 직접 연출한 '태양의 궤도를 따라서'라는 제목의 공연도 베네치아 중심가에서 선보이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한국 전통음악과 전통무용이 만나고, 보디빌딩과 현대음악이 어우러진 이 공연으로 전통이 간직하고 있는 기이한 아름다움을 보여줌으로써 전통을 향한 탐색을 그치지 않되, 전통 자체에 갇히지 않는 예술가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기쁨과 공포' 부문에 초청된 김성환 작가는 자르디니 전시장에서 출품작 '러브 비포 본드'(Love before Bond)로 관람객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여자 조카와 아프리카 수단 출신의 소년 등 사춘기에 접어든 데다 인종 문제로 미국 사회에서 정체성 혼란과 무기력한 분노를 느낄 법한 15세 동갑내기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거주지인 미국 뉴욕에서 워크숍 형식으로 영상을 촬영했고, 여기에 독특한 음향과 구조물을 입혔다고 밝혔다.
작가가 평소 천착하는 미국 건축의 '아버지' 필립 존슨과 1950년대 미국 흑인들의 정체성 찾기에 몰두한 제임스 볼드윈 등 미국 흑인 문학 대가의 흔적이 작품에서 묻어난다.
건축학과 수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의 작가인 그는 "무리수를 발견하기 전에는 유리수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것처럼 한 사회에서도 물리적, 역사적으로 실존함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처럼 취급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처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작품으로 풀어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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