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사드 비용 부담 발언은 고도로 계산된 것인가, 아니면 감춰야 할 것을 숨기지 못한 천박함의 발로인가? 어느 쪽이라고 해도 이 발언이 가져온 파장에 따른 우리 정부의 대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간) 주한 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비용을 한국 측이 부담해야 한다는 로이터 통신과의 회견 내용이 대선 정국을 크게 요동치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 뒤 워싱턴 타임스와의 회견에서도 “왜 우리가 사드 배치 비용을 내야 하느냐”며 “정중히 말하는데, 한국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결국 맥매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와 사드 전개와 운영유지 비용의 미국 부담을 재확인하면서 이번 해프닝은 종결되는 것처럼 얼핏 보이고 있다. 과연 사드 비용 문제는 끝난 것인가? 그것은 더 지켜볼 일이다.
사드 배치 비용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한 마디는 대선 정국을 요동치게 하고, 당일 열린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찬성 여부 및 배치 시점 등은 줄곧 대선 판의 단골 이슈였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차기 정부에서 신중한 검토와 국회 동의 등의 절차를 거듭 주장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더 나아가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는 대체적으로 사드 배치 찬성 입장을 보였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TV 대선 토론에서 사드 배치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것 때문에 공격을 받기도 했다.
대선 구도에서 큰 이슈이며 막판 대선 판도를 뒤흔들 만한 사안임을 미국 정부가 모르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미군은 지난 26일 사드 배치를 전격적으로 시도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사드 비용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한국 대선을 향한 미국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자칫 ‘내정간섭’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미동맹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미 동맹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상황이 고도화될수록 그 가치와 존재 의의가 높아진다. 현 정부가 중국의 경제적인 보복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에 찬성하고 나선 것은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위협 수위가 점차 높아져 ‘코리아리스크’로 작용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는 북한을 밀어붙이고, 중국을 설득시키는 기제가 되어 한반도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고육지책이다.
사드가 비록 북한의 직접적인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킬 수 없다고 해도, 미군의 후방기지를 보호함으로써 강한 전쟁 억지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즉, 사드 배치는 남남 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민적 합의라는 절차를 거쳐 제 항로를 찾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적 합의를 거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다. 그런데 미국이 직접 나선 최근의 형국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이 아직도 한국을 ‘속국’처럼 생각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한국 내 주장이 거세질 경우 새로운 관계에 직면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아무리 대통령 부재의 정부라고 해도 허둥지둥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외교부와 국방부의 태도를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런 정부를 믿고 어떻게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이번 대선을 통해 없애야 할 적폐 중에 외교 안보진영의 무능을 가장 먼저 명단에 올려야 한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