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일 치러지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들 간 가장 논란이 되는 이슈는 바로 외교안보 쟁점이다. 그중에서도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한 남북관계는 핵(核) 중의 핵이다. 대선 때마다 한국사회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북한 문제는 우리에게 그 한계점을 명확히 알려주고 있고 그 한계에서 서로 다른 이념전(戰)이 불거져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국론 분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기 대선을 야기한 박근혜 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류길재 전 장관은 '불통정부'로 낙인 찍힌 박근혜 정부에서도 다른 의견을 내놓아 속앓이를 많이 한 국무위원으로 기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를 지난 26일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인 북한대학원대학교에 만나 대북정책에 대한 박근혜 정부에서의 한계점과 차기 정부가 챙겨야 할 최소한의 것들에 대해 들어봤다.
"박근혜 정부 들어 가장 중요한 '신뢰외교', 남북 간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하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데 그 이유가 있다. 목표들을 이루지 못했던 것, 그게 가장 큰 실패다. 물론 그것은 박근혜 정부만의 책임은 아닐지 모르겠다. 남한 정부에 응하지 않는 북한도 실패 요인이었을 수 있지만 대남위협·핵개발·인권문제 등에서 문제가 있는 북한은 변수가 아닌 상수 아닌가. 그런 가운데 어떻게 하면 남북 간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노력했어야 했는데 그런 노력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신뢰를 쌓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인 것 같다. 아울러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정책은 사실상 북한에 대해 미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이 그런 미국으로 하여금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내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 한·미동맹이라는 것이 반드시 안보적인 동맹만 있는 것이 아닌데 대북억제력 차원에서만 안보동맹을 활용했다. 한·미동맹은 한국의 외교적인 입지를 넓히는 데에 굉장히 중요한 자산인데, 우리는 그러한 자산을 활용하지 못했다. 대북문제에 있어서 미국이 갖고 있는 역량을 발휘하도록 했어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도와줄 '좋은 참모진'이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사실, 결과가 말해주는 거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북정책 또는 대북정책을 위한 한·미관계를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이냐의 문제는 사실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아닌가. 문제는 '내용'이 아닌 '자세'다. 국가 역량 면에서 우리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미국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다. '역량'은 집중력의 차이라고 본다. 북한 문제에 있어 우리가 미국보다 훨씬 집중도가 있기 때문에 미국을 설득해 낼 수 있는 조건이 되는데 그런 조건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미국의 관심을 더 끌어들일 수 있는 자세를 가졌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커다란 전략적 방향이 박근혜 정부에게는 좀 적었다. 관심이 적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굉장히 커다란 문제라고 본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신뢰가 부재했던 정권이었다.
"신뢰를 쌓겠다는 방향은 옳았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남북관계가 적대관계니까. 불신을 깔고 있는데 신뢰를 쌓겠다는 건 너무나 좋은 정책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 문제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해 공약을 내놓았을 때도 대선 후보들이 '어떻게 신뢰를 쌓겠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정부가 정책을 실질적으로 추진하면서 '어떻게' 신뢰를 쌓을 것이냐의 방법론을 보여줘야 할 중요한 시기였다. 하지만 신뢰를 쌓자고 이야기한 박근혜 정부가 보여줬던 정책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북한이 들어주면 신뢰가 쌓인다'의 입장이었다. 한국의 대북정책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대남정책보다 정당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는 거다. 어찌 보면 신뢰란 것은 쌍방향인데 일방향이었다. '한국의 정책만 북한이 따라오면 된다'는 생각에서 북한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한국 정부가 안 따라줬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일방적 신뢰 정책이었다. 아쉬웠다."
-장관직에서 물러날 때 이임식에서 굉장히 미안해하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 정책은 실패할 수 있다. 사람이 하는 것이고 더군다나 여러 가지 변수가 있고 상대가 있는 대북정책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다만 최선을 다하고 나서 실패하는 것은 괜찮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다. 물론 내 생각대로 했다고 반드시 성공했을 거란 보장은 없다. 남북관계는 모든 것을 다 해볼 수 있는 관계다. 테이블 위에 모든 옵션을 다 올려놓아야 한다. 금기 같은 것은 없다.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관계란 지난 2014년 10월 인천아시안게임 때 북한 3인방이 내려왔던 것을 상기해 보면 알 수 있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라면 내려오기 하루 전 연락을 취해 그렇게 추진할 수 있었을까. 남북관계가 겉으로 봤을 때 전쟁을 했고 북한이 많은 도발을 했기 때문에 굉장히 위태로운 관계지만 또 이것을 전환시키려 하면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다양하다. 장관 재직 시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회한이 남는 거다."
-다른 정부에는 다 있었지만 박 정부에만 없었던 비공식 접촉. 정말로 없었나.
"제가 장관으로 재직할 동안 시도는 있었지만 접촉은 없었다. 시도와 관련해 될 만한 시도를 했느냐 안 했느냐는 중요하다고 본다. 시도는 했지만 이뤄질 만한 시도를 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러운 부분이다. 북한과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공식·비공식을 떠나 아무리 적대 관계라 하더라도 대화는 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도 실제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해야 한다고 했다. 대화 자체를 불온시한다든가 대화를 하면 북한과 야합하는 것처럼 보는 건 잘못된 거다."
-될 만한 시도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는 북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접촉시도를 했다는 이야기인가.
"북한이 접촉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비공식 접촉은 타이밍의 문제다. 접촉 시도 시점이다. 남북관계 상황이 안 좋을 때 접촉을 시도해 봐야 소용이 없다. 북이든 우리든 접촉 시도를 수용하지 않는다. 북한이 핵실험하고 미사일 쏘는 등 상황이 안 좋은데 누가 대화를 하려 하겠나. 정권 초기에 그런 시도를 하느냐, 아니면 그 정권 하에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돼 있는 상태에서 접촉을 시도하느냐는 것은 다르다. 두 번째는 누구를 통해서 하느냐의 문제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은 1차 정상회담을 현대그룹을 통했다. 당시 현대 금강산 사업 등이 이미 이뤄지고 있었고, 어떻게 보면 현대라는 북한이 신임하는 매개자가 있었다. 과거 또 다른 정부는 정부기관이 나서서 하기도 했다. 북도 신뢰할 수 있고 우리도 신뢰할 수 있는, 민간이든 정부든 그런 매개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코리아 패싱' 이야기도 있고 북한 문제를 둘러싼 우리의 주도권 이야기가 항상 나온다. 북핵 문제를 다루는 테이블에 북·미·중이 앉아 이야기 하는데 우리는 그 테이블에 끼지도 못하고 창문 밖에서 보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주도권이란 이야기가 나오는데, 북핵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당사자다. 당사자라고 해서 모든 문제를 다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서 특별히 우리가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문제를 푸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우리가 주도권을 쥐는 게 중요한건 아니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군사안보적 측면에선 북·미 간 대화·협상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안보적 측면에서 북핵문제의 당사자다. 미국도 그걸 인정한다. 미국의 어떤 정부도 굳이 북한 문제를 가지고 북한과 1:1로 딜을 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할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현재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만드는 것으로, 그게 돼야 문제가 일단락되는 것이다. 북한을 제외하고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한다. 걱정할 필요없다."
-현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나.
"한국이 당사자로서 북한 문제에 상당히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 근거는 북한문제로 인해 비롯되는 모든 문제는 한국에 직접적 영향을 모두 미친다. 미국과 중국에 미치는 영향보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이게 첫 번째 객관적 조건이다. 두번째는 만약 북한 핵문제만 놓고 봤을 때 정치·군사·안보적·외교적인 것만 놓고 해결이 되겠나. 결과적으로 경제적 뭔가를 줘야 할 거다. 그게 나중엔 경제협력이란 말로 가든지, 지원이란 이름으로 가든지 한다. 누가 북한에 돈을 줄 수 있을까. 한국밖에 없다. 가장 많이 줄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경제협력, 그것이 남북관계의 간극을 좁히는 데 가장 최선의 방법인가.
"우선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을 재가동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의 경우, 2008년 박왕자씨 사건이 벌어졌던 이전 시점으로 시곗바늘을 되돌려야 한다. 그동안 남북이 해왔던 것을 다 그만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해왔던 것을 하고 그 토대 위에 새로운 것들을 찾아나가야 한다. 개성공단 재개도 마찬가지다. 남북이 해 왔던 사업들을 재개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들을 하나씩 고쳐나가야 한다. 북한이 좀 더 국제적 기준에 맞춰서 나오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거기에 상응하는 북한의 조치가 필요한 거다."
-요즘 외교안보 공약들을 보면 대안도 없고 알맹이도 없다.
"워낙 조기 대선이 됐기 때문에 각 캠프들도 공약 같은 걸 충분히 내놓기 어려운 시간적 제약이 있었을 거라고 본다. 나도 과거 캠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외교안보 대북정책의 경우 쉽지가 않다. 정책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서 선거와 결부가 돼야 하는데, 표를 얻어야 하지 않나. 캠프들도 고민이 많을 것으로 본다. 속빈 강정이라고 비판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해되는 부분이 많다. 어떤 의미에선 지금 만약 캠프들이 구체적 조치를 내놓게 되면 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실제 정책을 해보게 되면 공약에서 했던 것들과 다른 것을 하게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런 얘길 했는데 지금은 대선기간이니 표를 얻기 위해 공약을 내걸 수밖에 없다."
-차기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어떤 전략적 방향들이 얘기될 필요는 있다. 대선주자들이 그런 방향에서 얘기들을 했으면 좋겠다. 예컨대 우리가 어떤 통일을 지향하는지에 대한 얘기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대북정책의 경우 통일문제와 분리되어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인데, 그런 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선주자들은 없다. 또 미·중·일·러 4강이 앞으로 펼칠 외교안보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국가이익을 어떻게 갖고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4개국 모두 장기집권이 가능한 정부들 아닌가. 사실 우리 같은 약소국이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의 문제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겠다고 하면 청와대, 내각이 모여서 진지하게 토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내용을 전문가들과 이야기하고 야당과 소통해야 한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어떤 정부든 소통이 너무 없었다. 지금 한국사회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문제다. 모두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이야기하고 정책을 결정해 버린다. 그런 다음 따르라는 것인데 이러니 항상 정당성 없는 정책이 돼 버리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그것의 정점을 보여준 정부다. 내부적으로 소통이 안 되는데 북한과 어떻게 소통이 되겠나.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런 자세를 갖는 한 우리 정부 정책이 힘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류길재 전 장관은...
△1959년 출생 △고려대 정외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석·박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경남대 북한대학원 부교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외교통일추진단 추진위원 △박근혜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 △북한연구학회 제12대 회장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