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학계도 "구체적 실행 방안 부족" 지적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한지훈 기자 = 대선 후보들이 제각기 통신비 인하를 내걸고 다양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져 자칫 '공약'(空約)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통신비 인하 내세워 표심 공략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는 지난 11일 월 1만1천원 상당의 통신 기본료를 완전 폐지하고,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을 개정해 지원금 상한제를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문 후보는 제조사와 통신사의 지원금을 따로 공시하는 단말기 가격 분리 공시제를 도입하고, 주파수 경매 때 통신비 인하 성과·계획 항목을 추가해 통신사가 스스로 통신비를 인하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또 데이터 요금 할인 상품을 장려하고, 공공 와이파이 설치를 확대하는 한편 취약 계층을 위한 무선 인터넷 요금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밖에 한국·중국·일본 3국 간 로밍요금을 폐지해 어디에서나 국내처럼 부담 없이 통화할 수 있도록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는 지난 13일 온 국민에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저가 요금제에 가입해 데이터를 금세 소진해도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안 후보는 또 저소득층·장애인·취업준비생 등에게 매월 기본 데이터를 무료 제공하고, 공공 와이파이를 5만개 이상 설치하며, 모바일 광고를 보는 데이터 비용을 소비자가 아닌 사업자가 부담하도록 표준 계약서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안 후보는 제4 이동통신 설립을 추진하고, 알뜰폰 사업자를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휴대전화 할부 수수료를 인하·폐지하겠다고도 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 후보는 지난 14일 청년실업자가 취업준비를 위해 인터넷 강의를 이용할 때 수강료를 50% 할인하고, 청년실업자와 창업자, 소상공인 등에게 데이터를 추가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홍 후보는 또 청소년 데이터 이용 패턴에 맞는 요금제를 출시하고, 저소득층에 단말기를 할인하거나 바우처를 제공하며, 중저가폰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홍 후보는 이렇게 하면 총 1천790만명의 취약계층이 1조6천억원에 달하는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지난 11일 무제한 음성 통화와 문자 메시지, 2GB의 데이터를 보장하는 보편 요금제 출시를 통신사에 의무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심 후보는 또 주파수 경매 방식을 개선해 요금 인하로 연결짓고, 통신비 심의위원회 설치·단말기 가격 거품 제거·제4이동통신 도입 등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 후보는 아직 가계통신비 관련 공약을 발표하지 않았다. 유 후보 측은 "현재 관련 공약을 준비하고 있고, 조만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기본료 폐지 논란…제4이동통신도 '글쎄'
가장 관심을 끈 공약은 문재인 후보의 기본료 폐지였다. 기본료 폐지를 주장해온 시민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이동통신업계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우선 스마트폰 도입 이후에는 기본료와 통화료의 구분이 없는 통합 요금제가 보편화해 기본료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이통업계의 입장이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요금을 산정할 때 기본료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업계는 월정액 1만1천원을 기본료 폐지 명목으로 일괄 인하할 경우 통신사들이 일제히 적자로 돌아서 기본적인 투자조차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1만1천원 인하 시 통신사들의 수입 감소액은 지난해 기준 7조9천억원으로 통신 3사의 영업이익 3조6천억원의 두 배에 달한다.
한 해 7조6천억원에 달하는 마케팅 비용을 줄여 충당하면 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대해서도 마케팅비가 줄면 단말 지원금과 유통망 장려금도 감소해 이용자는 휴대전화를 비싸게 사야 하고, 유통점은 심각한 경영난에 처할 것이라고 반박한다.
기본료가 폐지돼도 통신사의 피해가 크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기본료를 폐지해도 통신사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이 많다"며 "기본료를 없애는 대신 통화료를 인상하거나, 기본료에 종량제를 적용한 패키지 요금제로 전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와 심 후보가 약속한 제4이동통신 도입에 대해서도 관련 업계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업계는 정부가 지난해까지 추진하다 불발된 제4이동통신을 다시 추진할 만큼 시장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2010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제4이동통신 도입을 추진했지만, 재정 능력을 갖춘 사업자를 선정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제4이동통신은 통신 시장이 한창 성장하던 10년 전에 추진했다면 가능하겠지만, 지금과 같이 성숙한 시장에서는 과도한 마케팅 경쟁을 불러와 제 살 깎아먹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알뜰폰 업계를 지원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취약계층을 위한 데이터 요금제 및 공공 와이파이 확대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와 온국민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등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문 후보의 공약인 지원금 상한제 폐지의 경우 대선을 기준으로 상한제 일몰 시점인 9월까지 5개월이 채 남지 않아 조기 폐지 효과가 떨어진다는 평가다.
안 후보가 내세운 온국민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는 이미 이통사들이 추가 요금을 받고 제공하는 데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느려 소비자 실익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녹색소비자연대 윤문용 ICT정책국장은 "문재인 후보는 강제적 요금 인하에 초점을 맞춰 재원 마련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부족하고, 안철수 후보는 통신비 부담을 줄여준다고는 하지만 전체 공약의 방향은 모호하다"고 평했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부 대선 공약들은 시장 경제에서 민간 기업에 일방적으로 요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통신비 인하도 좋지만 냉정하게 실현 가능성을 검토해서 공약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okko@yna.co.kr
(끝)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