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총상금 270만 달러) 극적인 우승 드라마의 마침표는 렉시 톰슨(22·미국)이 아닌 유소연이 찍었다. 생애 두 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이다.
유소연은 3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 컨트리클럽 다이나 쇼어 코스(파72·6763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4개를 기록해 4언더파 68타를 쳤다.
최종합계 14언더파 274타를 적어낸 유소연은 톰슨과 함께 연장전 승부를 치른 끝에 올해 첫 ‘메이저 퀸’의 주인공이 됐다. 대회 전통에 따라 챔피언의 상징인 ‘포피 폰드’에 뛰어든 유소연은 우승 상금 40만5000 달러(약 4억5000만원)를 받는 ‘호수의 여인’으로 등극했다.
유소연은 이번 대회 전까지 59개 대회 연속 컷 통과 기록을 쓰며 가장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올 시즌에도 출전 대회에 모두 톱10 이내 성적을 거두며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은 세계 랭킹 3위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우승이 없어 주목을 받지 못했고, 시즌 전에는 스폰서도 등을 돌리는 설움을 겪어야 했다.
유소연은 비로소 감격의 눈물을 쏟으며 웃었다. 자신의 곁을 지킨 어머니와 여동생, 캐디와 함께 ‘포피 폰드’에 몸을 던진 뒤 “오랫동안 LPGA 우승을 기다렸는데 기대하지 못했던 우승을 했다”며 감격한 뒤 “그린에서 눈물을 흘린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나에 대해 ‘잘하지만 우승을 못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우승 세리머니에 대해 “원래 찬물로 샤워하지 않지만, 이런 것이라면 100번이라도 할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반전을 거듭한 각본 없는 드라마는 이날 13번홀(파4)부터 시작됐다. 단독 선두는 3타 차로 앞서던 톰슨. 여유 있는 우승이 예상된 순간, 톰슨은 대회 주최 측으로부터 전날 4벌타 통보를 받았다. 3라운드 17번홀(파3)에서 볼 마크를 한 뒤 공을 제자리에 놓지 못한 탓에 2벌타를 받았고,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스코어카드 오기로 또 2벌타를 받아 총 4벌타 처리됐다. 충격에 휩싸인 톰슨은 눈물의 라운딩에 나서야 했다.
톰슨이 13번홀에서 눈물의 버디를 잡으며 리더보드 상단에 5명의 이름이 올라 우승 경쟁은 혼돈에 빠졌다. 최대 변수가 생긴 이날 가장 침착하게 실수를 하지 않은 선수는 유소연이었다.
유소연은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두 번째 샷이 그린을 벗어나 까다로운 내리막 샷을 남겨뒀지만, 절묘한 세 번째 칩샷으로 홀컵 가까이 붙였다. 이어 유소연은 침착하게 버디 퍼트를 성공시켜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뒤이어 톰슨이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 극적인 연장 승부를 펼쳤다.
유소연은 18번홀에서 계속된 연장전에서 또 세 번째 칩샷을 홀컵에 스치며 가까이 붙였다. 연장전에서 흔들린 톰슨은 오르막 버디 퍼트가 짧았다. 유소연은 2m 내리막 우승 버디 퍼트를 홀컵에 넣어 짜릿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유소연은 마지막 우승 퍼트 상황의 긴장된 순간에서 “손이 떨리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수천 번이나 연습한 퍼팅이니 넌 할 수 있어’라고 내 자신을 일깨웠다”고 털어놨다.
유소연은 이날 라운드 내내 눈물을 쏟은 톰슨의 불운에 대해서도 “같은 선수로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 상황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한 타, 한 홀에 집중했다. 많은 한국 관중들도 이곳에 나왔고, TV를 통해 한국에서 응원하는 팬들 덕에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유소연의 이 대회 우승과 함께 한국 선수는 이번 시즌 LPGA 투어 7개 대회에서 5승을 챙겼다. 또 지난해 마지막 메이저대회였던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전인지가 우승을 거둔 데 이어 메이저대회를 2연속 제패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한 것은 2004년 박지은, 2012년 유선영, 2013년 박인비에 이어 유소연이 네 번째다.
박인비(29)가 13언더파 275타로 아쉽게 공동 3위를 차지했고, 양희영이 공동 8위(9언더파 279타), 전인지(23) 박성현(24) 이미림(27) 허미정(28)이 공동 14위(5언더파 283타)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