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무라카미 하루키(68)가 7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의 국내판권은 문학동네 품으로 돌아갔다.
문학동네는 지난달 31일 무라카미의 일본 에이전시로부터 한국어판 판권 계약 결정을 받았으며, 오는 6~7월께 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본 에이전시는 이보다 더 높은 선인세를 제시한 출판사가 있었지만 문학 전문 출판사로서의 실적이 독보적이고, '1Q84' 판매 실적이 우수한 점 그리고 그동안의 작품 경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문학동네가 최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학동네 측은 "일본 출판계와 독자들의 반응은 참고하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달라서 일본과 같은 반응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며 "작품 내용도 내용이지만 작가 자체에 대한 기대로 판권계약을 제시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라카미의 이번 작품은 화가인 30대 이혼남성이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을 두고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으며,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일본에선 출간 한 달여 만에 130만부 이상 팔리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난징대학살' 등을 다뤄 일부 우익세력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소설 속 한 등장인물은 "일본군이 전투 끝에 난징 시내를 점거해 여기에서 대량의 살인이 일어났다. 전투가 끝난 뒤의 살인도 있었다. 일본군은 포로를 관리할 여유가 없어서 항복한 병사와 시민 대부분을 살해하고 말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일부 우익 누리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매국노"라고까지 하며 그를 성토하고 있다.
그러자 무라카미는 "역사를 잊으려 하거나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며 일본 우익들의 역사 수정주의에 일침을 가해 다시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2일자 일본 언론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그는 최근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역사라는 것은 국가에 있어서 집합적인 기억"이라며 "따라서 이를 과거의 일로 치부해 잊으려 하거나 바꾸려 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아베 신조 정권 출범 이후 일본 사회에서 과거사를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 움직임이 퍼져 있는 것에 쓴소리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무라카미는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 "맞서 싸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소설가에게 가능한 일은 한정돼 있지만 이야기라는 형태로 싸워나가는 것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해당 인터뷰에서 소설 말미에 동일본 대지진이 다뤄지는 것에 대해 "대지진은 일본인의 정신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는 사건이었다"며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정신을 (책으로)쓰면서 대지진이 등장하는 부분이 없다면 현실적이지 않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5년 인터뷰에서 "사죄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과거 일본의 침략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일본이 과거사를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소신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