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차기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이렇게 제언했다.
최악의 남북관계 시대를 겪는 것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국내 최고의 북한문제 전문가로 평가되는 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각 정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 조언과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김 교수는 한달 남짓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할 대한민국의 차기 정부에 북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과거 정부에서 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현명한 자세를 주문했다.
"우선, 대북정책의 명칭을 너무 빨리 붙이지 않아야 하겠다. '햇볕정책',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비핵개방 3000'은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 명칭이다. '비핵개방3000'은 북이 제일 싫어하는 것만 모아놓은 것인데 북한이 대북정책에 호응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을지 의문스럽다.
'한반도 신뢰로세스'역시 신뢰가 되지 않은 남북관계에 어떻게 신뢰를 프로세스를 할겠는가. 명칭 때문에 정책을 하지도 못하고 발목이 잡히고 쓸데 없는 에너지를 너무 많이 보냈다.
따라서 이명박의 대북정책, 박근혜의 대북정책 등 그냥 대통령의 이름을 딴 대북정책으로 가다가 중·후반 가서 특징이 나타나면 국민들이나 학자들이 정부에 이름을 붙여줄 경우 그것을 쓰면 되는데 정책팀들은 꼭 뭘 만들어서 내세우고 싶어한다.
물론 전 정권과 차별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름에 발목에 잡히면 북한도 그것을 빌미로 흠집낸다. 이름에 대북정책의 성격이 담겨 있는 것 만큼 우둔한 행보가 없다, 우린 늘 그래왔다. 이번에 들어서는 정부는 그 유혹에서 벗어나 대통령이 된 사람의 이름을 딴 대북정책으로 가길 바란다."
▲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할 용어사용에도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는 지적같다.
" 그렇다. 차기 정부에 바라는 한 가지를 더 들자면, 이분법 적 민감한 용어를 되도록 정책에 넣지 않는 것이다. '흡수통일'이냐 '평화통일'이 등이 그것이다. '흡수통일'이라는 비슷한 용어만 써서 통일준비위원장이 식물인간화 된 것 아니겠나.
물론 남북관계가 흡수통일처럼 되지 않을 것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남북대결의 장과 통일의 장에선 쓰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언술에서 공개하는 단어와 정책은 따로 가야 한다. 파도는 치더라도 밑에 해류가 흐르듯 이분법 적 단어를 정책에 핵심키워드로 삼지말아야 한다.
'합의통일'은 멋있는 말인데, 남북이 합의해서 통일할 수 없다는 건 누구도 잘 안다. 그렇다고 합의를 하지 않아서 통일을 한다면 "흡수통일이다" 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우리 국민들이 납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 헌법에 있는 표현만 하면 된다. '평화통일로 간다', '남북이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등이다.
시장경제와 자유경제를 전면에 내세우면 안 되고 '우린 남북이 하나 되는 걸로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 '필요할 때 북한을 적극 도우면서 가지만 그동안의 대북지원에 대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겠다', '영유아 인도지원은 정치적 사안 상관없이 하겠다' 등이다.
영유아 인도지원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혜안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있어서 이것 하나만 끌고 갔다. 하지만 현 정권은 그러지도 못했다. 안보관이 불안할수록 헌법에 있는 것만 잘 지키면 된다. 이것만 지키면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문제없다."
▲ 박근혜 정부가 취해온 남북관계 평가는?
"철학만 있었고 정책은 없었다. 그만큼 원리주의 대북정책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닌거 같다. 왜냐면 박근혜 당선자 시절에도 유연한 전략이었는데 취임 바로 전에 핵실험이 있었다. 2013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 바로 열흘 전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서 통치자로서의 대북관이 결정적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 대통령의 대북관이 바뀌었다고 정부의 대북정책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는 것인가.
"얼마 전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이 토론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류 장관의 말은 금강산 관광회담이 재개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가)어그러졌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변에 안보관련 인물들이 류길재 장관의 융통성 있는 대화 쪽의 의견을 안 받은 거라고 본다.
철학은 확고했고 철학을 정책으로 만들어 내는데 있어선 근본적주의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전략적으로 탄력성을 보여야 할 시점에 보이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서 언술은 화려했다. '통일대박', '드레스덴 선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등. 그러나 말과 행동은 표리부동했다. 그런 점에서 최순실이 그런 용어까지 수정했다고 하는 순간 박근혜 대북정책은 없었던 것이 돼 버렸다. (최순실 손을 거친게) 아니라고 하지만 최순실의 조어라고 하는 순간 박근혜 대북정책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게 된 것이다."
▲ 우리나라의 대북정책에서 매파와 비둘기파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으로 느끼나.
"매파, 비둘기파라는 용어보다는 대북정책에 있어서 '절대 지지 않겠다'는 패배를 허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참모들로 많이 들어갔다.
외교란 것은 양보도 하고 얻을 건 얻어야 하는데 대북대결에선 양보라는 것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에선) 모처럼 특이하게 그런 사람들이 이번에 많이 포진했다. 예전엔 양보도 하고 얻을 건 얻고 그런 투트랙으로 갔는데 이번에 트랙을 하나로만 가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참모들의 생각은 두 가지를 다 가졌다고 하지만,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 한마디가 다른쪽으로 갈 엄두를 못내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 정도로 박 대통령의 대북 철학이 확고하게 바뀌었다."
▲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찌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 반대에 섰다고 볼 수 있다. 통치자 중에 참모들의 얘길 듣고 그때그때 적절한 선택을 했던 지도자들이 대부분이라면 대북철학에 있어서 김대중과 박근혜는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다.
참모들은 통치자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고 따르지 않으면 바뀌었다. 비둘기파 매파라고 보기엔 조금 다르다. 비둘기와 매로 나눌 경우, 비둘기와 매를 빼고 나면 중간에 있는 사람은 무슨 새로 해야될지.
이제는 남북대결에서 비둘기, 매파로 구별하는 용어보다는 양보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봐야 한다. 박근혜 쪽을 지지했던 국민들은 늘 우리가 북한에 이용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적극 지지를 해 온 것이다."
▲ 박근혜 정부는 과거 정부가 쌓아왔던 것을 일순간에 무너뜨렸다. 그 배경으로 미국의 영향도 컸다고 본다.
"맞다. 비공식(비선)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 이 정부의 대북정치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 중 하나였다. 공식대화 외엔 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비공식 라인으로 접근하려다 북한 내부에서 먼저 터트리는 바람에 낙마한 사람도 있지 않았나.
지금 당사자들도 자신이 왜 당했는지 잘 모른다. 그건 나중에 밝혀질 것이다. 물론 비선(비공식 라인)을 두지 않은 건 미국의 영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국가 간 외교는 늘 비공식 라인이 작동을 한다. 동맥이 있음 정맥이 있는 듯 피를 돌게 하려면 동맥 하나만 갖고는 되지 않는다."
▲ 뉴욕 채널도 어느 순간 끊어졌단 소리가 있고 박근혜 정부들어 남북관계에 많은 한계가 드러났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들어 5차례 핵실험을 했다. 지난해만 해도 탄도미사일을 36번 쐈다. 그것은 남쪽 정부를 고려한 행보라기 보다는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 내부일정대로 진행된 것이다.
'핵을 토요일, 일요일에 쏘느냐, 미국 신문에 어떻게 나느냐'에 대해 북한 사람들은 절대 고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미국을 고려하는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절대 없다.
우연히 맞으면 부수효과가 있겠지만 남쪽정부의 변수를 고려해 핵 실험의 일정을 선택하거나 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정말 자주식으로 걸어갔는데 우리가 입맛에 맞게 해석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 그렇다면 북한은 왜 하필 박근혜 정부들어 유독 강경책을 펼쳤는지 궁금하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6년차가 됐다. 초기에 김정은으로서 자기 중심체제를 만들어 갈 때는 남쪽이 대북강경정책을 쓴 것이 내부적으로는 굉장히 유리했다고 본다.
오히려 김대중 정부처럼 교류 활성화가 됐다면 김정은은 그 자신의 에너지를 여기에도 쏟아야 했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김정은에게는 체제 안정화 , 체제 공고화 등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그래서 북한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할 수록 북한은 내부를 다지는데 잘 활용했다. 그런바람에 남쪽과 대남교류,협력을 했던 사람들도 다 뒤로 물러나거나 숙청을 당했던 것이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알려지는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대표적이다. 사실 목함지뢰 도발로 인해서 8.25 공동보도 합의가 나왔고, 김양건은 북한 내부에선 영웅으로 올랐다. 싸우지 않고 확성기를 끌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만 하고 다른 것은 안하자 11월부터는 '김양건이 남조선에 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김양건은 어떻게 보면 대북 강경책의 내부적 희생양이었다고 본다.
김정은에겐 박근혜, 이명박 정부가 자신의 과도기, 권력이양기에 있어선 훨씬 더 좋았다고 본다. 이제는 어떤 정부의 스타일이 들어오든 간에 김정은은 별 고려하지 않고 그때그때 자기 일정대로 나 갈수 있다. 북한을 분석할때 북한 정권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를 너무 우리 중심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 남북관계의 좋은 시금석이 될 수 있겠다 싶다."
▲ 각 정부마다 나름대로의 아전인수를 부린 격인데, 이는 북한에 대한 무지가 기본 배경인 것 같다.
"몰라서도 그렇고 쉽게 생각도 한다. 결국 실체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식의 싸움, 경쟁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끝 없는 논의가 되고 결론이 나와도 수긍하지 않는 것이다. 펙트(사실)를 잘 알면 논의가 짧아지고 두 사람의 간격이 멀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을 잘 안다고 시작하기 떄문에 더 알려고 하지도 않고 북한 내부의 체제 내부의 작동원리도 모른채 우리끼리 퍼주자 안주자를 논의하니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사실 전문가들에게 김정은 외에 북한의 어느 인사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생년월일은 물론 어느학교 출신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트럼프의 외교안보 측근들만 해도 이미 신문에 다 분석이 되고 훤하다. 북한에 대해 최룡해가 몇년도생,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의 정확한 나이, 심지어 지역적 감각은 더 떨어져서 청진도 머리속에 안 떠오르고 계산해도 계산이 안 떠오른다.
한마디로 애국가 4절까지 영상을 봐도 북한에 위치한 지명은 백두산이 단 한번 나오는 것이 우리의 통일대박 영상아닌가. 애국가에 북한 지명이 하나 안 나온다는 것은 통일 친화적이지 않다. 통일 추구형이 아니다. 북한을 잘 아는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늘 우린 모르면서 잘 안다고 상태라고 생각하고 논의를 하니까 초당적 협력도 안되고 국민적 합의도 안된다."
▲ 통일부의 존재 이유가 있나. 국가와 국가간 존재로서 통일이란 단어보다는 남북화합이 더 낫지 않나.
"통일부 해체를 북에서 떠들었고, 통일부 해체는 민주평통과 국정원을 없애자는 말과 함께 항상 나오는 말이다.
독일에는 통일부는 없고 내독 관계성이 있다. 통일이란 얘기를 꺼내면 또 독일제국을 만들거란 분위기 때문에 동서독은 민족 내부의 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내독관계성이라 명명했다. 이후 통일이란 말이 나왔다.
우리도 과거 통일부를 만들어 놓고 통일진행을 못한다면 '민족화해협력부'란 대안을 만들었다. 햇볕정책이란 말을 북에서 싫어했고 결국 김대중 정부가 마지막엔 결국 '화해협력정책'으로 갔다.
나는 지금도 '화해협력부', '화해부' 등으로 하는게 좋다고 본다. 남북은 국가관계도 아니고 민족도 아니고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다. 공식적으로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한 관계에 있다고 남북한기본합의서에 명시했다."
[대담=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정리=강정숙 기자]
▶김영수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60)는...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통일정책위원장)이며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자 남북하나재단이사로 있다.
그는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및 동 대학원 △서강대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로 북한 연구의 길에 들었다. △일본 게이오대학교 방문교수 △육사 및 제주대 교수 △ 북한연구학회 회장 및 북한이탈주민연구학회 회장△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위원을 지냈다.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통일정책위원장)이며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자 남북하나재단이사로 있다.
그는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및 동 대학원 △서강대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로 북한 연구의 길에 들었다. △일본 게이오대학교 방문교수 △육사 및 제주대 교수 △ 북한연구학회 회장 및 북한이탈주민연구학회 회장△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위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