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전인 2012년 12월 12일 북한은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했고, 2013년 2월 12일에는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해 핵개발에서 일정한 진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2013년에 제시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대한 대비도 그것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협상 의지도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았다.
2014년 3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 드레스덴에서 ‘한반도평화통일구상’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먼저 독일통일을 예찬하면서 한반도에서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난 속에 부모를 잃은 북한 아이들이 거리에 방치되어 있고 추위 속에서 배고픔을 견뎌내고 있다는 외신보도를 접하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북한은 동년 4월 1일 로동신문 논평을 통해 “박근혜가 추구하는 ‘통일’은 우리의 존엄 높은 사상과 제도를 해치기 위한 반민족적인 ‘체제통일’이다.
그런 흉악한 속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통일구상’이니 뭐니 하고 떠들었으니 그야말로 낯가죽이 두꺼워도 보통 두껍지 않다.”고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남조선집권자가 ‘경제난’이니, ‘배고픔’이니 하고 우리의 현실을 터무니없이 왜곡하며 임신부와 아이들에 대해 걱정하는 듯이 생색을 내었다.”고 박 대통령이 북한의 경제난과 탈북자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보였다.
북한 지도부를 깎아내리면서 북한에 남한이 원하는 대화만을 제안한 박 대통령의 고압적 태도는 이후 남북관계가 장기간 경색되는 배경이 되었다.
2016년 1월 북한이 ‘시험용 수소탄’ 가지고 제4차 핵실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외에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오히려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이라는 과거에 부시 행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시도했으나 실패한 낡은 접근 방법을 ‘창의적인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측의 협조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5자회담 추진 의사를 밝힘으로써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주장하는 중국 및 러시아와의 이견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2016년 2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에 박근혜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가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결정했고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한국에게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보다 핵무기가 더 심각한 위협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후 남북관계를 전면 단절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를 통해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지만 북한의 동년 9월 제5차 핵실험과 미사일 능력의 급속한 고도화를 막지는 못했다. 결국 개성공단의 폐쇄는 북한 지도부에게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하지 못한 채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 약 5만5천명과 공단에 입주한 남한의 124개 영세기업 및 5,000개 협력업체 그리고 이들 업체에서 일하는 우리 근로자 12만4,000명에게 더 큰 타격을 주었다.
2016년 2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후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연설을 통해 “북한 정권을 반드시 변화시켜서 (…)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인권, 번영의 과실을 북녘 땅의 주민들도 함께 누리도록 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어떠한 방법으로 북한 정권을 변화시킬지는 제시하지 못하는 ‘허세’도 보였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변화되기 전에 박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먼저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