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선미 기자 = SK하이닉스가 일본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지분 인수와 관련, 재입찰 의사를 밝혔다. 세계 낸드플래시시장 2위인 도시바의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23일 반도체산업협회 정기총회에 참석해 "아직 공식적으로 딜 조건이나 일정을 못 받았다"면서도 "(인수 제안이)오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인수전이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다. 일단 돈이 문제다. 1차 입찰 때만 해도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 지분율을 19.9%로 제시했지만, 아예 낸드 플래시 신설법인의 경영권(지분 50% 이상)을 매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가 재입찰에 나설 경우 써내야 할 돈도 3조에서 10조원 규모로 껑충 뛰었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고 인수전에 참여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경우 10조원이 넘을 수 있어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큰 결단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의 해외 M&A 중 최대 규모의 계약으로 꼽히는 것은 삼성전자의 하만(미국 전장기업) 인수다. 삼성전자는 하만을 인수하는데 9조원을 썼다.
현금 등을 끌어모아 인수자금을 마련한다고 해도 10조원과 맞먹는 효과가 날지도 의문이다. 각 회사마다 추구하는 기술 방향과 제조 공정도 다르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난다고 100%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이 2가 아닌 그 이하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마이크론이 지난 2013년 파산한 일본 반도체 제조사 엘피다 메모리를 인수했을 때만 해도 업계에서는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를 제칠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마이크론은 현재 D램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에 뒤처져 있고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는 순위를 다투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SK하이닉스가 통큰 결단을 내릴지 관심이 쏠린다. SK하이닉스가 SK머티리얼즈, LG실트론 인수 등 최근 반도체 사업에서의 활발한 M&A 행보를 볼 때 인수 의지는 충분하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경영전략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SK하이닉스는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다. 그러나 낸드플래시 사업 경쟁력은 D램에 떨어진다.
지난해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5.4%로 1위고 도시바(19.6%), 웨스턴디지털(15.4%), 마이크론(11.9%), SK하이닉스(10.1%) 순이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반도체 부문 50% 이상을 확보하면 도시바의 기존 합작사인 웨스턴디지털과 연합을 통해 낸드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재입찰에는 SK하이닉스 외에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대만 반도체회사인 TSMC 등이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만 폭스콘,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러지와 웨스턴디지털, 사모펀드 실버레이크 등도 잠재적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낸드플래시는 D램과 달리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된다. 스마트폰 등 고사양 기기 사용이 증가하면서 낸드플래시 시장 전망도 밝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1GB로 환산한 낸드플래시 출하량은 2015년 822억개에서 2020년 5084억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CAGR)이 45%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