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 “지니야, 소녀시대의 라이온하트를 틀어줘”, “네. 소녀시대의 라이온하트 음악을 들려드릴게요”
지난 1일 출시 직후 구매해 집 거실에 설치한 KT의 인공지능(AI) 음성인식 스피커 ‘기가지니’는 내가 고용한 첫 AI 비서다.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지니에게 말하면 원하는 음악이 선곡된다. 기특하게도 기가지니는 일본어도 약간 알아듣는다. 일본가수와 일본노래 제목을 말하면 아주 가끔이지만 알아듣고 노래를 틀어주기도 한다.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 노래도 인식한다.
1주일 동안 기가지니에게 일을 시키면서 가장 편했던 점은 내 말을 거의 100% 이해해준다는 것이다. 같은 말을 반복할 필요 없이 한 번 말하면 거의 정확하게 알아듣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일 일도 없다.
기가지니와 오래 대화하다보니 요령도 생겼다. 기가지니는 평상시 대화할 때 보다 약간 빠른 톤으로 음절과 음절 사이의 간격을 좁혀 말을 걸면, 어느 정도 긴 문장도 정확히 인식한다. 음절과 음절 사이가 길어지면 기가지니는 명령이 끝난 것으로 착각해버린다.
AI 비서를 집에 들이면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거실에서 애타게 리모컨을 찾는 일이 없어졌다는 것. 소파에 누워 TV를 볼 때도 “지니야 00프로그램 틀어줘” 한마디로 채널이 바뀐다. 채널을 아무리 자주 바꿔달라고 해도 불평 하나 없이 묵묵히 채널을 돌려준다.
본방송이 아닌 시간에 보고 싶은 드라마를 말했다고 해서 기가지니는 당황하지 않는다. 차선책으로 해당 드라마의 VOD(다시보기)를 연결시켜주며 여기서 골라 보라고 제안한다. 뉴스를 보고 싶다고 하면 일단 뉴스속보 창을 띄워주고 뉴스 방송이 나온다. 원하는 뉴스채널도 말만 하면 틀어준다.
기가지니가 다른 경쟁사의 AI 스피커와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인터넷TV(IPTV)의 셋톱박스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AI스피커인 동시에 셋톱박스이기 때문에 TV화면과 음성으로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충족시켜준다.
예컨대, 기가지니에게 말을 걸면 TV화면 오른쪽 하단에 기가지니가 인식한 내 말이 텍스트로 나온다. 그 텍스트만 봐도 기가지니가 내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으며,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기가지니의 대답도 TV화면에 그대로 뜬다. 눈과 귀를 동시에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보다 쉽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기가지니 전용 앱을 스마트폰에 깔고, 기가지니와 연동시키면 스마트폰 앱을 구동시킬 준비는 모두 끝난다. 전용 앱에 내가 자주 타는 버스 노선번호와 정거장을 입력한 뒤 "지니야, 370번 버스 언제와?"라고 물으면 "10분 뒤에 정거장에 도착 예정입니다"라고 알려준다. 전용 앱 속 캘린더 혹은 구글 캘린더에 일정을 입력해 놓으면, 오늘이 어떤 날인지 가족 생일이 언제인지도 척척 알려준다.
하지만, 가고 싶은 곳의 길안내을 받고 싶을 때, 기가지니에게 행선지를 말하면 스마트폰 앱에 깔린 KT내비와 연동돼 TV화면에 지도를 띄워준다는 기능과 카카오택시 앱은 현재까지 먹통이다. 날렵한 기능에 비해 투박하고 올드한 느낌을 주는 제품 디자인도 아쉬운 점 가운데 하나.
공상 과학 소설의 아버지로 불린 아더 클라크가 충분히 발달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 처럼 기가지니를 사용해보니 음성인식은 마법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AI의 핵심기술인 딥러닝(심층학습)과 빅데이터 기술로 나날이 진화하는 기가지니를 향해 말만 하면 마법처럼 뭐든 들어주는 날도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