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이 고착화된 ‘잃어버린 20년’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 이유는 다양하다. 1985년 미국의 달러 강세를 시정하기 위한 G5의 ‘플라자합의’ 이후 급격한 엔고로 수출기업이 타격을 받게 되자 금리인하와 양적 완화 정책이 펼친다. 그러나 기업과 가계는 대출한 돈으로 소비·설비 투자를 하지 않고 주식과 부동산 사재기에 나서면서 일본 경제의 버블은 심각한 수준까지 확대되었다. 기업들의 주식가치와 집값은 3배 이상 폭등했다. 한때는 도쿄 전체를 살 돈으로 미국 전체 토지를 살 수 있고, 도쿄 왕궁 주변 땅을 살 돈으로 캘리포니아주(洲)를 살 정도였다니 버블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일본 재무성이 이러한 ‘비정상적 버블’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금리인상 등 투기억제책을 시행하자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고 이후 기업과 국민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격어야만 했다. 2000년대 IT 호황으로 경제가 잠시 살아난 듯했으나 또다시 닷컴 버블로 추락하며 저성장의 늪에서 허덕거렸다. 아직도 주택 가격은 과거 부동산 버블이 형성되기 이전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일본이 불황과 경기 위축에서 장기간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기업과 소비자들의 지나친 저축 성향에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정부의 최근 정부의 과감한 부양책에 힘입어 미미하지만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본 국민들은 언제 다시 어려울지 모르니 돈을 아껴야 할지 모른다는 심리가 팽배해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 경기 활성화의 한 축인 가계부문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다른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의 급속히 고령화된 사회를 탓한다. 과거 일본의 초고도 성장을 이끌던 전후 베이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가 은퇴하면서 경제운용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논리이다.
‘아베노믹스’는 대규모 금융완화, 과감한 재정투입 성장전략이라는 ‘3개의 화살’을 축으로 엔화 약세·주가 상승으로 기업 수익성을 개선하고 임금 인상과 설비 투자를 촉진해 소비를 확대시키는 전략이다. 단기적으로는 무제한 양적 완화와 재정지출에 의해 돈을 많이 풀어 일본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는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게 하고 중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4년을 넘긴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본 경제는 제로나 마이너스 성장에서 플러스로 돌아섰다. 엔화 약세로 인해 기업들의 수익은 늘어났다. 하지만 이는 국내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고용지표는 지속적으로 개선되며 취업지표가 1990년대 초반 버블기를 능가하고 있다. 그러나 완전고용에 가까운 취업시장에도 소비는 살아나지 않고 있는 것이 일본 경제의 현실이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일본내 일부 비판에도 아베가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어느 정도 보여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아베 정부가 주된 목표로 삼았던 디플레이션에서는 벗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일부 애널리스들은 일본이 근로자들의 임금인상과 재정부양책 등에 힘입어 올해 말까지 일본은행의 물가 상승 목표치인 2% 달성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과거 정권과는 달리 정치적인 안정과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해소가 아베노믹스에 힘을 싫어주고 있다.
그러나 ‘아베노믹스’는 도널드 트럼프의 행정부 출범으로 시험대에 놓였다. 트럼프가 지난 31일 일본의 환율 정책을 비판하면서 ‘엔저’를 주요 버팀목으로 마련된 그의 경제정책이 크게 흔들리게 될 위험에 처해있다. 오는 10일 예정된 트럼프와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는 일본이 “엔저를 유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맞지 않다고 적극 해명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트럼프발(發) 글로벌 환율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