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나게 살고 싶었던 태수(조인성 분)가 대한민국을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정우성 분)을 만나 세상의 왕으로 올라서기 위해 펼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 속에서 최두일은 유일한 누아르라고 할 수 있다. 박태수와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지만 늘 어둠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어둠은 어둠답게 종국에 비극을 맞더라도 그는 결코 비겁하게 굴지 않는다. “도망치는 것이 지겨워” 앞장서게 된 최두일은 어쩌면 가장 누아르다운, 누아르의 전형인 셈이었다.
하지만 정작 최두일을 연기한 배우 류준열(31)은 그런 최두일의 누아르스러움을 부정했다. “검사 같은 건달”로서, 빛을 모방하려 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사실 전 여자 관객들이 두일이를 멋지다고 생각할지 몰랐어요. 다들 두일이가 멋지다고 해서 놀랐어요. ‘응답하라1988’ 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뜨거운 반응이 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두일이를 만들어갈 때 저는 오히려 튀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영화 속 건달들과는 정반대로 만들어가자고 생각했거든요. 멋보다는 무게감과 점잖음에 중심을 뒀죠.”
그는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지만 사실 최두일의 행적을 따르다 보면 80년대 홍콩 누아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자들의 로망이 깃든 캐릭터인데도 그 멋스러움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랬더니 “물론 내게는 멋지게 보인 적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두일이는 외로운 인물이에요. 그의 직업이나 행동들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외로움을 표현하기보다는 덤덤하게 표현하려고 했었죠. 두일이를 보면서 때로는 멋지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건 남자들에게만 국한된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자 관객들까지 사로잡게 된 거죠! 예컨대 남자가 봤을 때 멋진 남자여야 여자들도 좋아할 것 같은 거요. 그래서 남자들이 더 좋아하는 남자다움에 초점을 맞춘 거였어요.”
남자가 봐도 멋진 남자. 그렇다면 배우 류준열과 최두일의 싱크로율은 얼마나 될까? 그는 “부분적으로만 일치한다”며 “선택의 문제는 다르다”고 짚었다.
“최두일이라는 인물을 준비하면서 그 역할에 자신을 투영하려고 했어요. 제가 가진 두일의 모습을 꺼내려고 했죠. 어떤 선배나 후배들은 자신을 지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캐릭터를 완성한다는데 저는 그런 방식보다는 제 안에 있는 캐릭터의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니 제 안의 외로움이나 고민거리를 찾게 되었고 그 모습이 두일과 맞아떨어진다고 본 거예요.”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욱 최두일이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기존 조폭 캐릭터와는 달리 검사 같은 무게감을 가진 이 캐릭터에 레퍼런스는 없는 걸까?
“우리나라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 조폭영화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코미디부터 누아르까지 여러 장르에서 조폭이 많이 등장했어요. 그렇지만 그 많은 작품 속에서 최두일을 닮은 캐릭터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더 검사 캐릭터들 찾아봤죠. 화이트칼라다운 느낌을 주려고요. 외적인 모습이나 행동들까지요. ‘조폭이 조폭 같지 않아’라는 말을 오히려 더 반기고 있어요.”
류준열은 차곡차곡 최두일에 대한 캐릭터를 모아나갔다. 기존 건달·조폭의 이미지를 완벽히 뒤집기 위해서였다. 그의 노력은 두일에게 빼놓을 수 없는 액션으로까지 이어졌다. “화려함보다는 두일이스러운 액션”을 추구했다는 말에서, 그의 철저한 접근법을 예측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액션 팀에서도 시나리오를 읽고 두일이라는 인물을 분석하셨더라고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간극을 좁히려고 노력했어요. 액션 연습보다 그 부분에 시간을 많이 쓴 것 같아요. 주먹이나 발차기 같은 것도 최대한 두일이스럽게 가자고 결론이 났죠. 액션에도 감정을 담으려고 했어요.”
류준열에게 “두일이스러운 액션은 무엇이냐”고 연달아 질문했다. 그는 명료하게 “깔끔한 것”이라고 답했다. 주먹으로 먹고산 남자의 프로페셔널함을 뜻하는 말 같았다.
“동철(배성우 분)의 액션은 번잡스럽잖아요. 두일에게 주먹질을 하는 동철을 보면서 참 모범생답다고 생각했어요. 상대방이 피하지 않고, 반격하지 않을 것을 예측한 듯 어설프지만 당당한 주먹질이었거든요. 권력을 가진 사람의 전형 같다고 할까요? 배성우 선배의 연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 부분이기도 해요. 저는 딱 그것의 반대이길 바랐던 것 같아요.”
영화 ‘더 킹’의 배우들을 두고 빼놓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었다. 바로 현 시국과 더불어 출연에 대한 우려는 없었느냐는 것이었다. 주연배우인 정우성이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이름을 올린 것을 보면 아주 근거 없는 걱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류준열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별로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건 그냥 영화잖아요. 비슷한 일이 일어나서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저는 영화 자체로 봤고 재밌었어요. 한재림 감독님의 작품이라고 해서 무슨 역할인지 묻지도 않고 출연을 결정했어요. 이미 마음속으로요. 하하하. 그리고 최근 들어 시국과 관련해서 이야기가 많은데 그런 것들이 조금 안타깝더라고요. 기본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건 한쪽을 지지하는 영화가 아니라 기본적인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인 것 같아요.”
올해로 31살. 적지 않은 나이지만 영화 ‘더 킹’ 현장에서는 늘 막내였다. 그런 류준열에게 “막내로서 현장은 어땠냐”고 물었다.
“저는 선배들이 하는 걸 그냥 흉내 내려고 했어요. 사실 저는 이런 상하 관계가 어색하거든요. 제가 연영과 출신이긴 하지만 휴학도 많이 했고, 복학을 늦게 해서 늘 후배들과 어울렸어요. 그래서 다들 편하게 친구처럼 지내다 보니 이런 진짜 선후배 관계가 낯설더라고요. 우성 선배, 인성 선배, 성우 선배는 정평이 난 FM적 선배시거든요. 선배라는 이름 아래 배울 게 참 많았어요. 가르쳐주시는 것들에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2014년 영화 ‘소셜포비아’로 데뷔한 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류준열. 그에게 “쉬지 않고 달리는 이유”에 관해 물었더니, “가치관의 문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기가 쉬고 싶으면 쉬고, 달리고 싶으면 달리는 거죠. 문제는 이 작품을 꼭 하고 싶다는 마음 같아요. 재미가 없으면 당분간은 좀 쉬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늘 감사하게도 재밌는 작품들이 들어왔거든요. 덕분에 아직 못 쉬고 있어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