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에 분개한 시민들이 지난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첫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후 광화문 광장으로 장소를 옮긴 2차 촛불집회에는 20만 명이 모였으며, 3차 100만 명, 4차 100만 명, 5차 190만 명, 6차 232만 명 등으로 급증했다. 시민은 한결같이 평화의 촛불을 들었고, 외신들도 일제히 촛불집회를 보도하면서 전 세계인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라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망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촛불은 횃불이 되어 전국으로 확산됐고,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끌어냈다.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299명이 투표에 참여하면서 찬성 234명, 반대 56명, 무효 7명, 기권 2명으로 압도적인 결과를 얻어냈다. 탄핵안 가결은 최종적으로 국회의원들의 손에 의해 이뤄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지난 7주 동안 전국의 광장과 노변에서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촛불을 든 시민들의 위대한 승리였다.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권력자를 직접 거리로 나서 퇴진을 요구했고, 박 대통령으로부터 사과의 형식을 갖춘 담화를 이끌어낸 데 이어 정치권이 탄핵안을 표결하도록 압박했다.
이번 탄핵안 가결이 사실상 '촛불민심의 승리' 또는 '민주주의 승리'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직장인 김모씨는 "국회가 분개한국민의 뜻을 받아들이고 잘 따랐다"면서 "대통령을 제대로 뽑지 않았을 경우 얼마나 참혹한 결과가 빚어지는지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들 개개인을 비롯해 정치인들에게도 큰 교훈이 됐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권력자에 맞서 거리로 나선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87년 6월 항쟁 때와는 그 양상이 매우 달랐다는게 시민·사회단체 안팎의 시선이다.
당시에는 자신들이 뽑지 않은 권력자로부터 대통령 직선제라는 시스템을 얻기 위한 투쟁이었다면, 이번 촛불집회는 자신이 뽑은 대통령을 처음으로 끌어내렸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탄핵안 가결은 선출된 권력도 언제든지 위헌과 위법적인 행동을 할 경우 내려올 수 있다는 교훈을, 시민들도 자신들의 한 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는 분석이나온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관계자는 "지난 9일 일어난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은 권력자가 위헌과 위법 행위를 하면 언제든지 자리에서 내쫒겨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물론 탄핵안 가결이 성사된 것은 '시민의 위대한 승리'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지만 승리가 견고하지는 못하다. 이러한 상황은 1987년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박 대통령은 물러나게 될 것이지만, 집권세력 교체와 시스템 개혁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에 따라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국회 결정은 국민의 명령을 따른 마땅한 결과이자, 전국 곳곳에서 촛불을 밝힌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면서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과가 남아있기 때문에 탄핵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축배를 들기엔 아직 이르다. 박근혜 체제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1987년 6월항쟁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당시 '직선제 개헌'을 관철시키면서 이제는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겠지라는 생각에 만족하고 물러났지만, 정치세력이 분열하고 권력을 탐하면서 한계를 드러낸 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다수 시민들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며 촛불집회를 끝까지 이어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대학생 최모씨는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조기 인용할 수 있도록 이번에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면서 "계속되는 영하권의 추운 날씨에도 지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씨는 "탄핵안을 이끌어낸 승리의 기쁨을 잠시 접어두고 헌재의 조속한 결정과 대통령 즉각 퇴진 없이는 단 한순간도 촛불을 끄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의 크고 작은 광장은 이제 정의와 민주주의 수호의 본거지가 됐다. 모두가 이번 촛불의 의미를 교훈 삼아 민주주의는 한 단계 발전시켜야 하며 폭력으로 얼룩진 시위를 넘어 보다 평화적인 분위기로 시민의식을 승화시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