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기득권을 향한 99% 국민의 반란이 시작됐다.” 1987년 6·10 민주항쟁 이후 최대 규모인 100만 명(주최 측 추산·경찰 추산 26만 명)의 시민들 외침이 지난 12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 울려 퍼지면서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인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이번 주 최대 분수령을 맞을 전망이다.
특히 ‘100만 촛불 행렬’에서 나타난 목소리는 특정 정파에 대한 비판을 넘어 그간 한국 사회의 깔린 1% 정치권력 등에 대한 분노라는 점에서 ‘앙시앵 레짐’(구체제)과의 결별을 위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습 여부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은 물론, 거국중립내각 및 조기 대선, 개헌 등 시민혁명 수준의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련 기사 2·3·7·23면>
실제 제3차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민심의 결은 그 이전과는 달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태와 세월호 참사 등 정치적 국면마다 촛불집회 등이 개최됐지만, 이념 갈등만 초래했다.
하지만 국가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를 보여준 ‘최순실 사태’를 규탄하는 촛불집회는 보수와 진보, 2040세대와 5060세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등을 가리지 않는, ‘탈 계층적 성격’을 보인 시민의 함성이었다. 운동권과 재야세력, 넥타이부대가 이끈 87년 6·10 민주항쟁과는 달리, 중·고생 ‘교복부대’, 앵그리맘(분노한 엄마)인 ‘유모차부대’ 등이 대거 참여해 “이게 나라냐”라고 외쳤다.
이는 지난 2008년 6월10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반대 촛불집회(주최 측 추산 70만 명, 경찰 추산 8만 명)와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규탄 촛불집회(주최 측 추산 20만 명, 경찰 추산 13만 명) 때의 참가 인원을 넘어선 수치다. 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임에도, 질서 정연한 평화행진으로 나타났다. 곳곳에서 “비폭력이 권력을 이긴다”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박 대통령도 관저에서 집회 상황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김중위(4선) 전 환경부 장관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무능한 정권 밑에 있는 국민들이 이렇게 위대할 수 있나 생각한다. 촛불집회가 평화적으로 이뤄져 든든하다. 그만큼 우리 정치의 미래가 밝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도 “(이번 100만 촛불은) 시민들이 창조적으로 집회하게끔 열어 둔 결과”라고 밝혔다.
민심의 분노에 놀란 정치권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10시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고 촛불 정국 이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청와대가 “촛불민심을 엄중히 받아들인다”라고 밝힌 만큼, 이번 주 박 대통령의 제3차 담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과 지난 4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과를 한 바 있다.
박 대통령으로선 ‘새누리당 탈당→영수회담을 통한 책임총리 추천→새로운 내각 구성’ 중 일부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는 국면인 셈이다.
다만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비주류를 중심으로 대통령 2선 후퇴와 지도부 사퇴에 방점을 찍고 있어 여권이 자중지란에 빠질 수도 있다. 비주류인 김무성 의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상시국회의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의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권 잠룡 중 첫 ‘탄핵’ 요구다. 여권 주류는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분열 최소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범야권도 이날 각각 국회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질서 있는 퇴진’을 고리로 박 대통령을 압박했다.
김수한(6선) 전 국회의장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가 아니냐. 통치 불능 상태라는 것”이라며 “100만 촛불 민심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직시하라”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