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유통 대기업 가운데 미르·K스포츠 재단에 가장 많은 후원금을 낸 롯데그룹의 대(對)정부 입장이 달라지고 있다.
8일 국방부에 따르면, 논란 끝에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부지로 정한 ‘성주 롯데스카이힐 CC(이하 성주 골프장)’ 매입을 두고 롯데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문제는 국방부가 성주 골프장을 매입하려면, 예산 확보를 위해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이에 국방부는 국유지와 성주골프장을 맞바꾸는 대토(代土) 방식을 원하고 있다. 이미 국방부는 경기도 남양주시 등의 국유지를 롯데 측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롯데 측은 시세가 1000억원에 육박하는 성주 골프장을 대토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국방부는 롯데 측의 부지 178만㎡(골프장 96만㎡, 임야 82만㎡)의 가격을 750억~8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는 시세에 한참 못 미친다.
만약 롯데가 시세나 감정가보다 저렴하게 성주 골프장을 국방부에 내놓게 되면, ‘배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롯데가) 수도권과 성주의 땅을 현재가치로만 환산해 바꿀 경우 가치평가를 잘못해 배임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사드 부지 협상이 난항을 겪는 표면적인 이유는 시세와 추정가의 차이지만, 일각에선 롯데의 입장이 최근 ‘최순실 게이트’ 직후 바뀌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신 회장이 불구속 결정을 받은 다음 날인 9월 30일 국방부는 사드 배치 후보지로 롯데의 성주 골프장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롯데 입장에서는 사드 부지를 내주고 신 회장이 자유의 몸을 얻었으니, 손해를 감수하고도 내줄 만한 카드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으로 현 정부의 국정 동력이 급격히 추락하면서 사드 배치 시기도 기약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자, 롯데도 사드 매각을 두고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롯데는 롯데면세점과 호텔 등 중국인 대상 영업이 사드 배치 논란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온 터라, 더욱 사드 부지 협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 정부에서 ‘형제의 난’ 논란 이후 국정감사 출석-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특허 재획득 실패-롯데그룹 일가 검찰 수사 등 숱한 잔혹사를 겪었던 롯데 신 회장이 사드 부지 앞세워 ‘반격’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협상 진전이 더디자, 국방부는 롯데와의 협상 완료 목표시한도 내년 1월로 늦추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정평가 작업을 거치더라도 사드 기지 설계-환경영향평가-주민설명회까지도 많은 시일이 소요된다. 여기다 야당에서는 대토 방식도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고 국방부를 압박하고 있어 롯데는 사드 부지 매각을 더욱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방부와 성주 골프장 매입을 놓고 다각도로 협상이 진행 중이며 아직 구체적인 매각 방식에 대해 결정된 바가 없다”면서 “지난달 국방부와 MOU를 맺은 이후 성주 골프장을 매각하겠다는 기존의 자사 입장도 달라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