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섭 영화 감독
<영화의 탄생>
<거지들의 전쟁>
올 해 여름은 더웠다. 그 이유인지는 극장에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다들 오래 걸려있었다. 그들을 피해 그나마 결정한 날이 8. 25일이다. 여름의 끝.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 영화들이 큰 영화들 틈바구니에 끼어들었다. 모두들 그 사이에서 승리를 바랬다. 모두들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을 꿈꿨다.
-1주차
“범죄의 여왕”이 개봉한 첫 주 260개 정도의 상영관에서 안정적으로 출발한 듯 보였다. 다들 이정도면 작은 영화치곤 괜찮은 상영관을 잡았고 안정적으로 상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안심하고 있던 순간 친구들에게 연락이 온다. 네 영화 시간이 좀 이상하다고 왜 이렇게 시간표가 구성되어 있냐고 묻는다. AM 8:00와 AM 25:00 상영이 잡혀있는 곳도 있고 18:00 이후 (관객이 가장 붐비는) 시간대는 아예 잡혀있지 않았다. 혹자들은 이런 식으로 잡혀있는 시간대를 ‘텀벙텀벙’이라고 부른다. 큰 영화들은 가장 좋은 시간대를 배치해주고 흔히들 ‘다양성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을 틈바구니의 다른 시간대에 배치하는 것.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SNS에서 내 영화를 검색해본다. 텅 빈 극장에 두 발을 올리고 ‘오늘 극장 전세 냈다. 기쁘다’ 이런 소식이 빈번하게 올라온다. 첫 주차에 나와 배우들은 무대 인사를 돌며 관객들을 만났고 상영 2주차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2주차
상영시간대가 텀벙텀벙 요동쳤던 영화는 좌석점유율이 좋지 못했다. ‘좌석점유율’이란 한 극장에 좌석이 얼마나 찼는지를 볼 수 있는 수치이다. 관객들에게 극장전세를 줬던 영화는 점유율이 좋을 수 없었고 2주차에는 60개관까지 떨어지게 된다. 이게 불과 영화 개봉한지 4일이 지난 후 일이다. 여기서 고민해볼 문제가 있다. 영화는 재미가 있다면 얼마든지 입소문을 타고 역주행을 하며 흥행할 수 있다. “과연 내가 만든 영화는 재미있었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재미없는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시장경제논리에 맞는다. ‘스스로 자신의 영화가 재미있다’라는 건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자본이 많이 투입된 영화는 재미를 떠나 자본의 크기 때문에 보호받기 쉬워진다. 그만큼 홍보를 하고 그만큼 상영관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은 영화는 어떨까? 영화의 관객을 만나면서 완성된다. 하지만 이 기본가치가 흔들리면 영화는 자신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한마디로 작은 영화들은 고유의 가치를 상실하기 쉽다는 뜻이 된다.
-3주차
추석이 다가왔다. 날씨는 서늘해지고 또다시 대작영화들이 추석시즌을 맞아 개봉했다.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영화들은 IPTV로 이동해서 다른 살길을 모색하게 됐다. 이제 20개관 이하로 극장이 줄었다. 지방에서 멀티플렉스에 상영하던 영화들도 다 내리게 됐다. 명절이라 사람들로 북적이는 극장가에서 빠져야할 때가 왔다. 이제 하루에 100명 남짓한 사람들이 극장을 찾아준다. 이 관객들은 어려운 시간배정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찾아온 고마운 관객들이다. 이렇게 4주차로 넘어가게 된다.
-4주차
지금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적고 있다. 개봉이 시작된 순간 감독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던 사람에서 마권을 들고 경주마를 보고 있는 도박꾼으로 변신한다. 매일매일 스코어를 체크하고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의 연속이다. 영화가 내릴 즈음부터 도박꾼의 물이 빠져가고 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마치며>
이 ‘거지들의 전쟁’은 16년 8월에 특별하게 생긴 일이라기보다는 극장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작은 소동이다. ‘범죄의 여왕’은 이 작은 소동에서 그래도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케이스다. 더 작은 더 힘든 영화들이 일 년에 수도 없이 사라진다. 조금이라도 이 사라짐의 속도를 늦출 수 있으면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